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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정보서재

독점대기업의 노무관리 전략에 대한 연구

by 경제시대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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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대기업의 노무관리 전략에 대한 연구: 새로운 노조운동에의 대응을 중심으로>>

 

 

I. 문제의 제기 : 독점대기업의 노무관리 분석이 갖는 의미

 

 

89년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87년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체의 건설이라는 문제가 노동운동의 중심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민주적 노동조합들과 새로운 노조운동의 흐름을 하나의 전국적 대오 속에 묶어 냄에 있어서 재벌, 혹은 독점자본 산하의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조합을 민주화하는 것은 전국적 구심의 건설만큼이나 중요한 노동운동의 최대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있어서 대기업 사업장들은 지금까지 이른바 어용노조, 혹은 노사협조주의적인 기업별 조합체제의 실질적인 기반이라는 점에서 노조운동에서는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노동운동권의 입장에서 이들 대규모 사업장들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묶어 세울 수 있다면 노동운동의 가장 강력한 조직적, 물적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과 전국적 차원에서 진보적 노동운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대규모 사업장에서의 노조민주화가 갖는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부문의 노동운동은 권력과 독점자본의 강력한 통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기본적으로 이 부문의 노조운동이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철저한 규제, 그리고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노무관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일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에도 권력과 독점자본은 대기업의 민주파 조합원 대중의 조직적 진출에 대해서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한 통제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노동에 대한 관리의 수단들을 급속히 고도화함으로써 독점자본의 축적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독점자본에 의한 노무관리의 수단들은 87년 이후 노동자 대중의 폭발적인 자생성을 조직화함으로써 조합민주화의 구심으로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속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이와 같은 기업의 대응은 노동조합운동을 자본이 통제 가능한 제도와 관행의 틀 속에 엄격히 가두어 둠으로써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발전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국 대기업의 작업장체제 분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대기업의 노무관리에 대한 분석은 대규모 사업장에서의 노조민주화와 기업별 조합주의를 극복하고, 이에 대응하는 노조민주화운동의 전략을 발전시켜 가기 위한 전제작업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점 대기업의 전략적 사업장들은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노동에 대한 관리전략의 가장 고도화된 측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개별기업의 노무관리 사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점자본은 이 부문의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무관리의 방식과 체계들을 도입해 왔다. 자본은 노동의 효과적인 대응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고도의 설비와 노무관리 조직들을 구축해 왔으며, 이와 함께 국가권력에 의한 강력한 물리적 통제의 도움을 받으면서 노동에 대한 전제적 지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87년을 계기로 독점자본 산하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전횡적 지배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조직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지배계급은 적어도 이와 같은 자생적 에너지 자체를 파괴할 수는 없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본과 국가권력은 기존의 형식적 노무관리 체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고도화된 대응전략을 마련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II. 노무관리에 대한 이론적 접근

 

 

1. 자본의 노무관리 : 그 성격에 대한 인식

 

 

경영학적인 의미에서의 노무관리는 개별기업이 그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노동력 자원을 확보하고, 합리적 이용을 도모하여 노사관계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활동을 총칭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본에 의한 노무관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기업조직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제거하고, 자본관계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목표 속에서 자본의 주도하에 형성되어 온 노동자 관리체계의 총체를 지칭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노무관리는 생산력의 발전단계와 노동력의 이용방식에 조응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고, 노동자들을 기업에 종속시키기 위한 계획과 지휘 및 통제의 구체적인 체계와 방식들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과 노동간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한 사회의 제반 사회, 경제, 역사적 조건들을 반영하면서 발전, 체계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이와 같은 노무관리를 통해 기업내 권력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의 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초기단계에서 자본의 노무관리는 자본의 직접적, 폭력적 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은 복잡하게 계층화된 기업의 직제와 조직을 활용하면서 노동에 대한 통합을 이끌어 냄으로써 고도의 관리체제로 노동자들을 규제하게 된다. 결국 자본의 입장에서 노무관리의 최종적 목표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완성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본의 전략에 있어서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관리는 노무관리 전략의 핵심적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이미 조직 그 자체로서 경영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뿐 아니라, 자본의 규제를 벗어날 경우 자본에 대한 저항의 조직적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은 노동자들의 조직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경영의 목표에 기능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운동에 대한 대응의 전략들을 쉴 사이 없이 만들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 형성되는 제반 규칙의 내용들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다.

 

기업체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이와 같은 노무관리의 형성 과정에서는 첫째, 노동자와 그 조직 둘째, 자본경영자와 그 조직, 그리고 셋째, 국가기구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나타난다. 이들은 통제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정한 역사적 맥락과 조건들 속에서 투쟁하면서 규제양식을 결정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조건들로는 1) 사회전체적인 계급관계, 혹은 정치적 국면의 성격, 2) 자본의 성격, 3) 자본의 축적, 혹은 시장적 조건, 4) 해당산업의 기술적 조건, 5) 문화이데올로기적인 성격, 그리고 6) 노동운동의 성격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인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론 자본과 노동운동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회전체적인 계급관계의 성격은, 계급간의 정치경제적 세력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한 사회에 있어서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지형을 형성한다. 특히 정치권력의 노동운동에 대한 물리적 통제가 항상화 된 한국사회의 경우 이와 같은 정치적 계급관계의 성격은 노동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노사관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행위자들 간에 권력의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의 정도가 어떠한가, 정치권력의 성격은 어떠한가, 그리고 노동기본권의 법적 제도적 보장의 정도 등은 이와 같은 계급관계의 성격으로부터 우선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관리의 형성과정에서 두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자본의 성격이라는 문제이다. 자본의 속성과 성격은 노무관리 전략의 선택에 있어서 노동운동의 성격이라는 문제와 더불어 가장 기본적인 결정요인이다. 이와 같은 자본의 성격 속에는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 기업경영의 목표, 자본의 소유구조, 기업내 의사결정구조상의 특성,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 등이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기능적 자본보다는 인격화된 극소수의 소유자본가들이 기업의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 자본가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 역시 권위적 노동통제를 선호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자본의 성격은 개별기업 차원에서도 노무관리상의 일정한 정책적 편차를 야기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자본이 취할 수 있는 노무관리의 정책적 수단들은 개별자원의 성격보다는 자본의 집합적대응의 일정한 기조 속에서 선택, 결정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개별자본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관리전략의 변이는 그다지 넓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개별기업의 노무관리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세번째 주요 조건으로는 자본의 축적조건, 혹은 시장적 조건을 들 수 있다. 자본의 축적조건은 개별자본 뿐 아니라 총자본 수준에서 노동에 대한 규제의 물적 조건들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축적능력의 문제는 노동자 통합의 물질적 조건과 직결되면서 그와 동시에 자본에 의한 노무관리 정책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의 기본적인 국제적 종속성, 그리고 이와 연관된 축적기반의 취약성은 독점자본과 국가의 폭력적 노동통제를 강제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속성에도 불구하고 독점자본은 일정한 독점적 초과이윤을 보장받아 왔으며, 이와 같은 조건은 특히 일부 기간적 성장부문의 노무관리의 내용을 고도화하는 주요한 토대를 형성한다. 또한 개별자본간의 축적조건의 편차는 개별자본, 혹은 산업, 업종별로 노무관리 전략의 일정한 편차를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관리 정책의 네번째 요인으로는 해당산업의 기술적 조건을 들 수 있다. 기업내 노사관계는 언제나 특정 기업의 기술적 제반 조건들(공장, 생산조직, 노동과정, 기업체의 규모, 원재료 등) 위에서 형성된다. 해당 산업의 기술적 조건들은 노동조직과 통제구조에 영향을 미치며, 이와 함께 노동력의 구성과 노동력의 기술적 특성, 그리고 이와 결합된 노동자의식과 조직을 일정하게 규정함으로써 노동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점자본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적 조건들의 대부분이 급속한 종속적 산업화의 과정에서 일시에 수입되고 설치된 것이었으며, 그러한 설비에 대규모의 노동력이 기업별로 고용되어 결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형성 과정의 기술적 조건들은 실제로 노동력의 기업별 형성,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기업별노조의 형성을 수반하게 하는 중요한 기술적 조건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한 산업의 기술적 조건들은 자동차나 전자와 같은 흐름생산과 조선 철강과 같은 묶음생산’(batch production), 그리고 석유화학 등과 같은 장치산업’(process production) 등의 기술적 특성에 따른 노동력의 조직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 그리고 이에 대한 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번째 사항으로는 문화, 이데올로기적인 조건을 들 수 있다. 이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태도의 이데올로기 적 특성을 형성기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 자체가 노동운동의 발전에 의해 일정하게 규정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노동운동에 대한 독점자본의 태도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배제하는 기본 원칙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계급적 연대에 대한 엄격한 차단과, 자본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며, 반공주의에 기초한 폐쇄적인 기업별조합의 육성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변함없는 통제의 목표로 하고 있다. 비록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발전은 이와 같은 자본의 통제질서의 상당한 부분을 허물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통제의 기조는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다.

 

자본의 노무관리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여섯번째 조건으로는 노동운동의 성격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노무관리 자체가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에 대한 대응이라는 본질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때, 노동운동의 성격은 앞서의 제반 요인들에 의해 일정한 부분 규정되면서 또한 이와 동시에 여타의 모든 요인들에 대한 역규정 요인이 된다.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상적인 저항은 노무관리의 변화를 야기하며, 그러한 변화가 다시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개별자본의 차원에서 볼 경우 그것은 자본과 노동간의 힘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기업내 권력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기우냐에 따라 노동관계의 제반 규칙과 조직의 체계가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되며, 자본의 노무관리란 자본의 항상적 지배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갈등의 산물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의 노무관리가 갖는 기본적인 성격과 이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을 검토해 보았다. 우리는 독점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들의 검토를 통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분석의 틀을 상정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분석의 틀 속에서 노무관리의 변화를 동태적으로 파악할 때 독점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은 노동운동의 발전상황, 재벌그룹간, 산업업종간, 지역간에 일정한 편차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독점자본의 노동조합에 대한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해당 시기나 국면, 혹은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계급적 역관계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성격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노무관리 정책은 이와 같은 규제요인속에서 선택되는 것이며, 일정한 차별성을 갖고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노무관리를 인식함에 있어서 우리는 개별자본간의 정책과 통제방식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별자본의 노무관리란 결국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발전상황과 계급적 역관계 속에서 선택되는 통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노무관리는 해당 기업의 특수성을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계급적 역관계와 노동운동간의 관계 속에서 개별자본간의 특수성을 동시에 파악하는 것이 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 대한 올바른 파악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I> 노무관리의 주요 규정요인들과 이들간의 관계

┌────┬─────────┬────────────────┐
│ ▼ ▼ │
│ ┌────┐ ┌────┐ │
│ │자본의 │ │자본의 │ │
│ │성격 │ │축적조건│ │
│ └────┘ └────┘ │
│ │ │ │
▼ │ ▼ ▼
┌────┐ └> ┌────────┐ ┌────┐ ┌──────┐
계급적 │ │독 점 자 본 의 │ │자본의 │ │노동 운동의
역관계의│══> 노 무 관 리 │══>규제양식<══>│ │
변화 │ │전 략 │ │변화 │ │ 성 격
└────┘ ┌> └────────┘ └────┘ └──────┘
▲ │ ▲ ▲
│ │ │ │
│ ┌────┐ ┌────┐ │
│ │산업의 │ │이데 │ │
│ │기술조건│ │올로기 │ │
│ └────┘ └────┘ │
│ ▲ ▲ │
└────┴────────┴─────────────────┘

 

 

노무관리의 일차적인 주도권은 자본에게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 및 관리전략들에 대한 철저한 파악을 통해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대응전략을 통해 계급적 연대성과 조직을 발전시키지 못할 때 사업장내의 권력관계는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것은 개별자본 뿐 아니라 전체사회적인 역관계를 통해서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주도에 의해 노무관리가 고도로 발달한 전형적인 역사적 사례를 일본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독점자본의 노무관리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큰 편차를 보여준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큰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점자본은 일본식 노무관리의 중요한 부분들을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전략의 중요한 준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2. 자본에 의한 노동자 관리의 전형 : 일본의 기업별조합체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87년 이후 노동운동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면서 일본의 기업별 조합체제가 독점자본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기업별 조합과 우리나라의 기업별조합은 그 내용성과 구조화의 정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식의 기업별 조합체제를 통한 노사협조주의의 구조화는 독점자본이 87년 이후 지향하고 있는 대노조전략의 중요한 구성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중요한 조직적 과제이다.

 

서구와는 달리 일본에서 유독 기업별조합이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임노동의 형성과정 자체의 일정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노동조합은 서구와 같은 숙련노동력에 기반을 둔 직업별 조합의 전통이 약한 상태에서 숙련노동자들의 기계와, 자동화에 의한 공세에 대항하면서 발달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끊임없는 후발형기술발전의 과정에서 기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임노동이 기술이 아닌 회사를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기업별조합의 발전 과정이 임노동의 형성과정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조건들을 자본과 노동간의 오랜 기간에 걸친 갈등과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적 노사관계의 주된 특징으로 들고 있는 종신고용제’, ‘연공제등은 결국 독점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별조합체제를 자본의 통제하에 안정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물적,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독점자본은 고도로 발달한 기업내 노동시장을 형성시킴으로써 장기근속자들을 중심으로 종업원들의 직제를 구축하여 왔다. 내부노동시장의 구조화 과정에서 형성된 직제와 회사의 노무관리 조직은 곧바로 노동조합의 조직으로 이어지면서 조합의 조직 자체가 회사의 노무관리 조직과 강고히 결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조직 속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인간관계와 초보적인 이해의식은 직업이나 산업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특정한 기업과 공장, 사업장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자본은 이와 같은 기업내 인간관계를 장악하기 위해 연공제, 종신고용제를 비롯한 장기고용 관행과, 이를 장려하는 보상제도들을 발달시키면서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를 기업별로 차별화 하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고용 및 노동조건의 기업별 차별화 속에서 기업별로 분단된 내부노동시장이 극도로 발달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은 기업의 주도하에 통합되는 과정을 밟는다.

 

노동자들을 기업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한 자본의 정책은 내부노동시장이 확립이나 직제의 강화와 더불어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비공식조직들의 내부화를 함께 지향한다. 자본의 입장에는 직제의 강화를 통한 경영권의 확립뿐 아니라, 이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기업별 노사관계의 장악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그런데 회사 내부에 형성된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비공식 조직들은 언제라도 회사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는 직장내 민주주의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되어 왔다. 따라서 자본은 공식적인 회사조직 뿐 아니라 비공식조직에 대한 철저한 파악을 통해 종업원들 간의 사회적 관계의 거의 전 영역을 통제하려 한다. 회사의 노무관리조직과 기업별조합의 내부화, 그리고 종업원들의 비공식조직들에 대한 통제는 노동에 대한 경영의 완전한 지배를 의미하며, 종업원들은 자율적인 노동세계를 상실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기업사회속에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다.

 

이처럼 회사의 노무관리 조직과 일체화된 종업원간의 위계질서가 조합의 조직에 그대로 이식된 기업별조합은 사실상 회사의 조직이 지배하는 준 노무관리기구에 불과하게 된다. 일본의 독점자본은 이와 같은 유형의 기업별조합들을 노동과의 오랜 기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제도화시킴으로써 기업의 운명과 조합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배타적인 의식에 기초한 기업별 노사관계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기업별조합체제에 기초한 노사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조합의 간부들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의식을 탈피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기업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적 지위와 사회적 위신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조합의 간부들은 그들이 동일한 기업에서 장기간 근속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별조합의 조직과 운영은 이와 같은 경영의 노동에 대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노동조합 간부들은 대부분이 동일한 기업에 장기간 근속해 온 종업원들이며, 이들의 일부는 간부직을 떠나면 대기업의 내부노동시장 하에서 승진의 과정을 거쳐 회사의 경영진이 된다. 따라서 조합의 간부가 된다는 것은 노동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회사의 경영진과 거의 동일한 입장에서 조합의 일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기업별조합의 간부들은 자연히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식적 연대활동이나 외부의 개입을 극도로 기피하게 된다.

 

경영측 역시 기업별조합과의 교섭만을 중시하면서 노조의 경영에 대한 협조주의적 자세를 확보하려 한다. 이와 같은 경영의 의도에 반발하거나 기업경영적 관점에서 역기능적인 조합의 간부나 활동가들은 철저히 배제되게 된다. 일본의 독점자본들은 이미 50년대 초반까지 진보적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에 대한 철저한 배제작업을 거의 완료하게 된다. 전후 노동조합의 좌익적 간부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적극적인 계급적 연대’, ‘노사대등의 원칙’,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향’, ‘사회민주화’ ,‘경영민주화’, ‘사회주의적 지향성등을 도모하던 흐름들은 결국 기업별조합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기업사회의 내부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일본의 자본가들이 기업별조합의 진보성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중요한 전략은 진보적 조합에 대항하는 2조합을 결성하면서 노동자들 간의 분열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본의 기능에 역행하는 조합들은 장기간의 쟁의과정을 거치면서 기업의 입장에 동조하는 종업원들로 결성된 제2조합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조합의 분열 과정에서 자본은 제2조합을 철저히 지원하면서 분규의 과정에서 원래의 진보적 조합은 거의 예외 없이 소수파 조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조합이 소수파로 몰리게 되면, 소수파조합의 활동가들과 간부들에 대해서는 제2조 조합과 결합한 자본의 공세와 차별정책을 가속화한다. 결국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의 진보성은 제2조합에 의해 완전히 탈취 당하게 되고, 폐쇄적인 기업별 종업원의식에 기초한 기업별조합이 현장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과정에서 진보적인 노동운동세력의 오류와 한계도 대단히 큰 비중을 점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후에 별도의 설명과제로 설정토록 하겠다.

 

오늘날 일본의 노동조합은 거의 완벽하게 기업사회에 통합된 노사협조주의적인 기업별조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외부세계와의 단절’, ‘계급적 연대의 거부’, ‘기업별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동조합은 당연히 계급적 연대주의보다는 종업원 연대주의, 계급적 대립보다는 노사협조와 노사일체주의를,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보다는 종업원만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처럼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기업별조합을 계급적 이해롤 중시하는 조직과 비교하면서 조직의 구조적 성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I> 기업별조합의 구조적 성격

조직의 특성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기업별조합
계급적 이해에 기반한
노동자 조직
이데올로기





노사협조주의/노사일체적
성향
종업원연대주의>계급연대주의

계급적 연대의 추구


계급연대주의>종업원연대
주의
조직의 목표

개별기업의 종업원들만의
이익을 추구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추구

주된 이해의
충족
종업원으로서의 이해만을
충족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이해
충족
조직통합의
기준
종업원간의 유대 노동자계급 연대의 강화

 

 

결국 이와 같은 조합의 성격은 경영에 대해서는 철저히 기능적인 활동들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업별조합의 경영의 통제 하에 철저히 지배될 때 그것은 자본의 노무관리에 보조적 수단을 하나 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일본의 기업별조합은 그러한 의미에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종업원 통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노조의 육성에 의한 일본적인 노동조합관리가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식의 노동조합통제를 위해서는 독점자본이 기업내 노동시장을 고도로 발달시킬 수 있는 축적의 물적 조건들이 일정하게 있어야 하며, 조합의 간부들을 노무관리의 직제로 통합시킬 수 있는 기업조직이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독점자본은 극히 특별 경우 이외에는 이와 같은 기본적인 조건들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외형상 기업별조합이라는 구조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별조합은 노사협조주의적 기업별조합의 안정화에 필요한 필수적인 조건들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일본의 기업별조합과 한국 기업별조합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몇 가지 기준에 의거해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II> 한국과 일본의 기업별조합의 특성 비교

 

비교항목 일본의 기업별조합 한국의 기업별조합
기업의 소유와
지배구조
금융자본, 회사간 상호소유, 경영자 지배구조 폐쇄적 개인자본가중심의 소유구조
형성의
역사적 배경







숙련노동자들에 의한 직업별 노동시장과 숙련노동적 전통의 취약성


기술도입에 의한 후발형 산업화
직업별 노동시장과 전통의 결여




기술과 공장의 도입에 의한 종속적 산업화
조합원의
범위와 구성











생산직과 사무직의 구분이 없이 특정한 기업의 종업원 모두가 가입하는 전원일괄가입형기업별조합


생산직과 사무직이 함께 단일한 조합을 구성

특정기업의 정규고용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되는 생산직, 혹은 사무직 중심의 단일직종형기업별조합


생산직과 사무직의 분리
(일부 대기업의 경우 함께 구성)
조합의
조직적 구조









기업내 복수노조의 인정
지배적인 기업별조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소수파의 형태로 조직화


이데올로기와 직제, 근속에 따른 노선의 분열
복수노조의 법적 금지
기존의 조직에 대항하는 조직내 민주파세력이 조직화




민주와 어용에 따른 노선의 분열
조합간부의
선출과 주된 구성











해당기업의 정규고용 노동자 중에서 선출되는 아마추어적 조합간부


해당기업의 장기근속자 중심 회사의 직제를 통한 조합 조직의 장악

해당기업의 종업원에 엄격히 제한, 직업적 성격 결여




장기근속자들 중심의 지배가 결여되어 있음
회사의 직제를 통한 지배구조 결여
조합간부의 사회/
정치적 이동경로



기업별조합의 간부들이 노무관리 부서나 기업체의 관리자로 이동/정당 지방자치체의 대표자로 진출 극소수의 부패한 노동관료와 국가권력의 결탁구조/일반조합관료들의 사회적 이동의 경로가 제한적
조합의 운영



조합의 운영과 실무상의 기업별 자치권

조합의 운영과 실무의 자치
(일부 산업에 교섭권이 상부조합에 위임)
기업별조합의
물적 토대와




노동시장의 성격







종신고용제, 연공제 등 일본의 노무관리의 토대가 확보됨




안정된 기업내 노동시장
노동시장의 기업별 폐쇄성
기업횡단적 노동시장의 결여/독점자본의 고도화된 내부노동시장이 발달
노무관리적 기반의 취약
국가권력의 물리적, 법적 강제에 의존한 노조 통제


노동시장의 상대적 개방성 내부노동시장의 미발달





기업별조합의
의식적 토대

강고한 종업원의식
종업원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기업의 실질적 지배
종업원의식의 기반 취약
생활세계에 대한 기업의
형식적지배
비공식적 종업원 조직에 대한 통제 기업사회’, ‘직장공동체에 통합된 비공식 조직 의제적직장공동체/
기업의 통합력 취약

 

조합에 대한
노무관리의 전략

















직제와 기업조직 속에 조합을 통합시킴




진보적인 노동운동세력의 축출과 배제’/철저한 기업내조직으로 조합을 길들임


2조합을 통한 진보적 조합의 배제/진보적 조합의 소수파조합
노무관리 조직의 침투정도가 취약/기업별조합의 안정성 결여


기업별조합의 계급적 연대에 대한 철저한 물리적 차단(국가에 의한 법적 강제)


권력의 물리력과 폭력적 탄압에 의한 민주노조의 배제

상부단체의 구조











상부단체의 이념적 분열/
민간대기업의 우익적 노동관료들이 노동운동의 흐름을 주도


상부단체의 영향력은 거의 없음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된 제도권노조/반공적 노사협조주의/대기업의 어용노조들이 상부단체의 지도력 장악


상부단체의 영향력 거의 없음

참고: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연구소 편, 󰡔노동조합 조직 연구󰡕 (백산, 1989)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했음. 일본의 경우에 대해서는 특히 앞서 제시한 문헌들을 주된 참고자료로 활용하였음.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기업별조합체제는 그 형식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큰 내용적 편차를 보이고 있다. 전자의 경우를 기업별조합의 형식적 지배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자를 기업별조합의 실질적 지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구조는 자본과 노동간의 관계 속에서 그 역관계의 변화에 따라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며, 그것은 거의 모든 투쟁의 영역에 걸쳐 일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일부 선도적인 고축적 독점산업의 경우 이와 같은 일본식의 노무관리 전략은 이미 상당한 부분 침투해 있다. 또한 독점자본은 노동통제의 모범적인 패턴을 일본의 경우에서 상당한 부분 찾으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노동에 대한 통제체제를 완성하려 할 것이다.

 

III. 독점자본의 노무관리에 대한 동태적 개관

 

 

1. 87년 이전의 독점대기업의 노무관리

 

 

1987년 이전까지 독점자본은 노사관계관리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노동시장에 있어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풀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던 조건하에서 독점재벌을 중심으로 한 특혜와 지원을 기초로 고축적을 지속할 수 있었고 노동정책의 측면에서도 노동쟁의 등 집단적 노사관계를 정부의 공권력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자본의 노무관리는 고용관리, 임금관리 등 기초적인 노무관리에 국한되었으며 이러한 것조차도 자본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제적이고 개별적인 노사관계의 양상을 띠었다. 노동조합운동이 공권력에 의해 규제됨으로써 집단적 노사관계의 관리는 정부에 의해서 대체되었고 자본은 단지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생산관리에만 전념하는 노무관리의 양상을 띠었다.

 

따라서 87년 이전에는 집단적 노사관계관리는 개별자본가의 경영이데올로기와 노사관에 따라서만 억압적인가, 온정주의적인가 하는 약간의 차별성이 발견될 뿐이다. 전반적으로 독점자본은 체계적 노무관리를 확립하는 데 무관심했고 노동쟁의가 발생하는 경우, 공권력의 물리적 강제력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 양상이었다. 87년 이전의 노사관계와 노무관리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체계적인 노무관리의 부재와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에의 전적인 의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정부에 의한 집단적 노사관계의 관리를 의미한다.

 

87년 이전까지 대부분의 독점자본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조결성 시도에 대하여 가혹한 탄압으로 대응하였다. 이들 기업에서 노조결성시도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망한다”, “노동조합은 불순분자, 빨갱이들이 하는 것이다. 노사협의회로 하자는 등의 협박과 회유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주동자들은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해고되었고 법적으로도 방위산업체 특례법에 의해 기본적인 노조활동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 저항은 소수의 반복되는 노조결성 시도나 무정형적인 자연발생적인 폭동의 양상을 띠는 경우조차 있었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엄격한 자격제한과 사실상의 임명제를 통해 회사의 노무관리 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한편 국가의 노동정책은 노사관계의 갈등과 대립의 측면을 억압적인 법률과 공권력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해결한 반면, 노사협조를 제도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국가의 이러한 정책은 80년의 노동법개악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한편으로 법적 강제력을 통해 기업별노조체제를 일반화시키고 제 3자개입 금지조항을 통해 자본의 힘의 우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노사협의제를 의무화하여 단체교섭제도를 형해화시키고 공장새마을운동 등을 통하여 노사간 협조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국가의 노동정책은 노사관계를 순수하게 기업 내의 노사협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이를 위한 제도와 법률을 정비함으로써 노사협조에 기초한 일본적 노사관계를 위로부터 강제로 창출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적 노사관계의 구축전략은 연공제와 종신고용이라는 물적조건을 구비하지 않은 채 단지 억압과 강요에 의해서 노사협조를 유지하고자 하려는 것이었고 따라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전면적 종속에 다름 아니었고 이것을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기업내 노무관리는 전적으로 경영주의 전일적인 지배에 기초한 가부장적이고 단순한 노동통제의 양상을 띠었으며 심지어는 병영적인 군대식 규율에 기초하여 노무관리가 이루어지는 경우조차 상당수 존재하였다. 이러한 노무관리가 가능하였던 근거는 기본적으로 장기간의 군부정권하에서의 사회전반의 권위주의화와 정권에 의한 노동조합운동의 물리적 억압에 기초한 노사간 역관계의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87년 이전의 노무관리와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정치적 국면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문제가 결정적인 변수였고, 독점자본의 노무관리가 전적으로 공권력의 물리력에 의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군부정권의 동요는 바로 기업내 노동자들의 인간적 욕구를 수십년간 억압해 왔던 유일한 장벽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급격한 공업화의 과정에서 기업규모의 팽창, 산업구조의 고도화, 노동자들의 교육수준의 향상과 의식의 성장, 젊은 세대 노동자들의 진출에 따른 탈권위주의의 확산, 노동조합운동의 이념적 자원의 확산 등의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도 독점자본은 단지 생산, 판매, 재무 등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관리 및 노조대책의 영역은 국가에 일임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독점자본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가부장적인 경영조건하에서의 전제적인 노사관계를 지속하였고 노동조합의 결성을 물리적으로 억압하였다.이러한 상황은 결국 노동자들의 성장하는 권리의식과 독점자본에 의해 강요되는 제반 노동조건간의 모순을 증대시킴으로써 일거에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2. 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의 발전과 독점자본의 대응:노무관리의 고도화

 

 

87년 이전의 이러한 노무관리방식은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의 성장과 노조결성 욕구의 강화와 함께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으며 6.29 이후 새로운 정치지형의 형성과 노동조합운동의 급격한 성장은 기존의 노사관계와 노무관리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창출하였다.

 

80년대 들어서 대공장에 밀집한 새로운 세대의 고학력 청년노동자들은 대공장 조직을 통해 단련된 노동자적 생활양식과 그 수의 힘으로 인해 노동운동의 강력한 잠재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87년의 전국적 노동쟁의는 바로 이들 대공장에 밀집된 청년노동자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70년대의 무정형적이고 비조직적인 폭동의 양상과는 달리 투쟁의 주체로서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했고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억압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들은 자연발생성을 기초로 한 것이었지만, 점차 88년을 지나면서 목적의식적이고 진보적인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단위사업장의 틀을 넘어서서 연대의 폭을 확대해 나아갔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발전을 주도한 것은 독점대기업에서의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조합원들이었으며 이들은 단순한 임금문제를 넘어서서 조합과 직장내 민주화 등 보다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독점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운동의 비약적 성장과 대중의 자연발생적인 움직임에 대해 목적의식성을 부여하기 시작한 진보적 노동운동대열의 강화는 87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국가도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 새롭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국가권력은 과거 노동쟁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대응해 오던 방식에서 876월항쟁 이후부터 원칙적으로나마 노사당사자의 자율적 해결을 표방함으로써 사업장수준에서의 노동쟁의에 대해 개별자본의 일정한 역할과 체계적인 예방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독점자본의 입장에서도 단순히 노사분규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정치국면의 변화에 따라 보다 체계적인 노무관리의 도입과 노사분규의 사전 예방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특히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추세와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인간화욕구와 경제적 분배에 대한 요구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되었고, 노동조합운동 내에서도 점차 진보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독점대기업에서의 진보적 노동운동세력의 진출을 막는 문제가 선차적인 과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따라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업별 노조체제를 고착화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탄압 뿐 아니라 인간관계관리, 조직관리, 대노조관리의 모든 측면에서 체계적인 노무관리 정책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노무관리의 전략은 노무관리기구의 정비와 재편, 노조에 대한 체계적인 개입, 인간관계관리의 강화, 이데올로기공세의 다변화, 생산현장에서의 라인관리의 강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노무관리 전략은 1)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냄으로써 노사협조와 기업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관리체계, 2) 조직 및 정보관리를 통해 노사분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인 강제와 감시체제, 3) 노조 내부에 협조주의 세력을 육성하고 민주파를 고립화 시키기 위한 대노조전략을 중심적인 축으로 하고 있다. 87년 이전에는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방적인 강제에 의존하였고 체계적인 노무관리가 결여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최근의 독점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은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조직관리에 의한 강제와 감시체계가 구축되고 있고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방안들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러한 동의와 강제의 체계적 결합에 의한 노무관리야말로 87년이후 변화한 독점자본의 노무관리전략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노무관리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먼저 기업내의 노무관리 기구가 새롭게 재편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공식적인 노무관리 부서의 확대와 전문성의 강화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이러한 노무관리 부서를 축으로 한 일상적인 감시와 정보체계가 그물망처럼 형성되고 있다.이러한 일상적인 감시 및 정보체계는 조합원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성분 분류와 각종의 공식 및 비공식 조직을 통한 감시에 기초하여 노사분규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로운 노무관리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과거와 달리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불만을 해소하고 작업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인간관계관리와 고충처리제도의 내실화이다. 과거와 달리 이러한 비공식집단과 고충처리제도(혹은 상담제도)의 활성화는 한편으로는 현장조합원들의 불만을 사전에 해소함으로써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의존도를 약화시키고 쟁의 발생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노무관리의 지침을 마련하는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최대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종업원들의 불만을 제거하고 기업에 대한 일체감을 증대시킴으로써만 최대한의 생산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인간관계관리는 기업내 노무관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이전의 독점대기업 노무관리가 일방적인 권위관계에 기초한 억압적 규율에 의해 노동의 동원을 보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관계관리의 강화는 비로소 독점자본의 노무관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관리에는 이데올로기교육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기업내 교육은 보다 많은 잉여가치 생산을 위하여 생산과 관련된 집체식 교육과 군대식 규율의 유지에만 역점을 두어 왔고 그 전제조건이 되는 인간관계나 노사관계와 관련된 교육은 전혀 부재했던 반면, 87년 이후의 기업내 교육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인식시킴을 통해서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해심과 일체감을 높이는 것과 함께 직장을 통하여 일의 의의와 가치를 자각시킴을 통해 업무에 대한 만족을 높이고 불만을 해소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교육은 점차 그 교육방식이 전문화되고 있고 제 계층의 상태에 따라 적합한 교육내용들이 선택되고 있으며 그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주로 반복 및 주입식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며 과거 일방적인 반공이데올로기를 무조건적으로 반복하였던 데 비해 노사협조주의 및 노사공동체 이데올로기가 핵심적인 교육내용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87년이후 노무관리의 핵심으로써 자리잡고 있는 것이 대노조관리 전략이다. 이미 노동조합이 조합원 대중의 역량을 조직적으로 묶어 세워 자본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자본이 노동조합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하는 문제는 기업내 노사관계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일방적으로 노조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에게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자본이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묶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념적인 수준에서는 노사협조주의를 노조내에 부식하는 문제이고 조직적으로는 진보적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기업별노조체제의 안정화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노조전략의 목표는 우선적으로 독점자본의 통제 범위밖에 있는 노조내 민주파에 대한 체계적인 탄압과 고립화를 매개로 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점대기업의 조합규모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노동관료를 육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조합내 민주파들의 활동을 견제하는 것, 기업내의 이른바 순수한노동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공세를 통해 진보적인 노동운동의 대의를 왜곡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을 방해하는 것, 전투적인 조합원들을 회유하여 이들이 목적의식적인 조합활동가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조합내 활동가들을 고립화시키는 것, 조합내의 다양한 세력을 조직화하여 이들간의 상호견제를 통해 노노투쟁을 유도하고 조합내 단결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것, 그리고 이를 기초로 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회의와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 등이 이러한 대노조전략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노조관리전략은 곧바로 노동쟁의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연결된다. 즉 노조전략이 가장 극명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노동쟁의에 대한 자본의 전략이다. 노동쟁의가 이미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이상 자본은 임금과 단체교섭을 둘러싼 노동쟁의에 있어 관리 가능한 범주에 속한 노동조합과 그렇지 못한 노동조합을 철저히 구분함으로써 전혀 다른 대응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과거와 같이 무조건적으로 쟁의에 대한 억압과 탄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성격에 따라 차별적이고 선택적인 대응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노조의 경우는 여전히 물리적 억압과 쟁의의 장기화를 통해 노조지도부를 와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어용노조를 포함하여 자본이 관리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노조의 경우 이들 집행부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 관점에서 자본이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 무노동 무임금원칙이었는데 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투쟁무기이자 교육수단인 파업을 곧바로 노동자들의 임금손실과 연결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파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이 무노동무임금 이데올로기야말로 장기적인 노무관리전략과 관련하여 자본에게는 노사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한 중요한 지렛대일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억제함으로써 조합내 전투적인 민주파들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87년 이후 독점자본의 노무관리의 중심은 당연히 노동조합운동의 발전과 그 전개양상에 따라 약간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7-88년 중반까지는 노동조합운동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대한 억압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직적인 수단으로서의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에 그 초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88년 하반기 이후 전국적인 수준의 목적의식적인 연대가 활성화됨에 따라 독점자본의 대응전략도 기업별 노조체제의 유지와 기업내에서의 진보적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독점자본의 대응전략은 87년 이후 국가권력의 노사자율 해결 원칙이 점차 전략사업장에 대한 직접적인 공권력 개입으로 변화되는 현상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적인 노동운동으로의 성장전화 가능성이 많은 민주노조의 집행부와 진보적인 조합간부를 고립화시키는 전략을 통해 노조운동 내부에 이른바 순수한 노동조합운동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객관적인 토대 및 정치국면의 변화와 관련하여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지만, 자본의 노무관리전략의 변화라는 점에서는 단순한 노조활동의 부정으로부터 이념적인 수준에서의 노사협조주의와 조직적인 수준에서의 기업별 노조를 뿌리내리는 전략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IV. 독점대기업의 노무관리 : 사례 연구

 

 

1. G

 

 

G사는 전기전자, 화학, 정유, 전선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독점재벌의 하나이며 소비재 중심의 종합화학분야와 전기전자 중심의 정보산업분야를 통해 급속한 자본축적을 이룩하여 왔다. 상대적으로 기업의 지역적 집중성이 약하고 전기전자를 주력업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노동력의 비중이 높아 노동력구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G사의 주력기업인 G사의 경우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일관조립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노동과정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노동과정의 성격상 전자산업에 일반적인 단조롭고 강도 높은 노동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라인을 중심으로 한 기계에 의한 노동의 통제가 일반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가전제품의 경우는 일관작업의 성격에 더해 냉장고, 에어컨 등 덩치가 큰 제품이 많기 때문에 중노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노동력을 중심으로 한 장시간노동도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 여타 중화학 부문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기전자 중심의 산업의 성격으로 인해 자동차나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한 다른 재벌기업에 비해 성별에 의한 노동력 분할, 일관조립 라인에 기초하여 체계화된 라인수준에서의 노동통제 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경영문화와 관련해서 보면, G사는 기업 총수를 정점으로 혈연, 지연에 얽힌 철저한 가족지배체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혈연관계를 중시하고, 가부장제의 전통적인 서열을 하나의 조직 요소로까지 정착시키고 있는 전형적인 기업으로서, 가족주의적 문화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경영문화는 노무관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상대적으로 인간관계 관리와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또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부터 대부분의 계열사에 뿌리깊은 어용노조가 존재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점기업과 달리 노조결성투쟁을 축으로 한 격렬한 노동자 투쟁을 전개한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고도화된 어용노조의 통제방식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투쟁열기가 왜곡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G사노조는 87년 이전까지 금속노련을 지배해 왔던 어용노조의 본류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63년 노조가 결성된 이래 회사측과 밀착된 노조관료들은 노동조합을 좌지우지해 왔다. 따라서 G사의 노무관리에 있어서도 노동조합을 축으로 한 노무관리가 중요한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이들 어용노조 간부들의 지도력이 노동자 대중의 자발적인 투쟁의지를 어떠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투쟁의 맥을 끊어 놓는가 하는 점이 노동자투쟁의 전개양상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89년 상반기의 G사 투쟁을 선도했던 G사 창원2공장의 경우 신설공장 이어서 어용노조의 지도력과 기업의 노무관리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노조민주화투쟁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대부분의 독점기업들이 그렇듯이 G사의 경우도 노무관리의 핵심적인 사항들은 그룹수준의 기회와 대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룹 기획조정실내의 노무관리전담팀을 정점으로 하여 인간관계관리, 공식적인 기업조직의 관리, 대노조 전략을 축으로 상호밀접히 결합되어 있는 총체적인 노무관리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즉 인간관계관리는 기업내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거하고 쟁의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반면 조직관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 감시 및 강제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기업내 자본의 지배력을 관철하는 것이다. 대노조전략은 이러한 동의와 강제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직접 노동조합운동을 겨냥한 대응전략인 것이다. 이하에서 노무관리의 세 수준을 자세히 검토해 보자.

 

먼저 인간관계관리란 사업장내 노무관리의 인간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며, 노동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최대의 생산성을 발휘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노무관리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간관계관리는 노동자들의 내재적이고 심리적인 불만을 해소하고 노사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고 노사간 일체감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이다. 따라서 인간관계관리에 있어서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기업내 공식, 비공식 조직을 활성화시킴에 의해서 상하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만 및 고충처리 체계이다. 이 고충처리야말로 일상적인 노무관리의 핵심이다. 고충처리를 내실화 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도를 약화시켜 조합활동의 내용을 유명무실화시키며 상담과정을 통해 조직내 현장 동정을 세심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요인을 대화로써 해소함으로써 직장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고 다른 하편으로 상담결과를 노무관리의 지침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둘째로 기업내 공식조직을 활성화시킴을 통해 상하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직장생활에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한 제반 제도와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조직의 활성화는 사원간담회나 대화의 시간의 운영, 직반장간담회, 경영설명회, 분임조활동을 통한 상호협력 분위기 조성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직장내 비공식집단을 적극 후원함으로써 의사소통의 통로를 다원화하여 구성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조직목표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원활화와 동시에 인센티브제와 직무급 제도, 능력 위주의 인사원칙 등 직장생활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한 활동 등이 강화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제반 의식교육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기업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 상대적인 근로조건, 복리후생의 우위를 적극 홍보하는 것, 제반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편 노동자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노무관리체계에 중요한 것이 종업원교육이다. 이 종업원교육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식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종업원교육은 세 가지 수준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 가능한데, 첫째는 반공 및 국가경제에 관한 이데올로기교육이다. 둘째는 기존 질서에 대한 순응과 개인의 장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개인주의적이고 순응적인 인간형을 창출하기 위한 교육이다. 셋째는 타사, 타작업과의 비교우위를 강조하여 긍지를 갖게 함으로써 상대적 우월의식 및 기업의식을 갖게 하는 교육이다, 이러한 제반 종업원교육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기업목표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노무관리의 인간적 측면이 노동자들의 불만을 일차적으로 제거하고 기업의식을 주입하기 위한 제반 방안이라고 한다면, 노무관리의 조직적 측면은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노무관리의 그물망을 구성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라인 수준 에서의 구체적인 노무관리를 그 핵심적 내용으로 한다. 노무관리의 그물망이란 노무관리업무를 전문화함으로써 예방적인 차원의 선행 관리를 중심으로 노무관리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 내에 정보를 수집하는 노무관리팀과 이를 분석, 기획하는 노무기획팀으로 업무를 전문화하고 인사노무 관련 모든 부분을 정보원 화하는 것이다. 즉 전 사원을 포괄하는 기업내 공식조직과 비공식조직의 모든 부문에 걸쳐서 조직단위별로 정보체계를 형성하고 단일한 노무관리부서를 정점으로 하여 회사내 모든 정보 및 노무관리와 관련된 업무의 역할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물망을 도식화한 것이 <그림2>이다.

 

 

<그림 II> G사의 노무관리 네트워크

 

경 영 주

노 무 관 리
부 서


정 보 수 집


분석


확인


조치

 

 

이러한 노무관리의 그물망을 구체적인 활동내용과 관련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III > 노무관리 네트워크의 임무체계

 

A. 공식적 조직 : 노동조합, 현업 부서, 지원 부서

구 분 협 력 대 상 활동 담당자 중 점 항 목 유 의 사 항
노동조합

집행부




노무담당부,
과장




공장장

-불순집단조직자,
선동자(노동법에 능통한자)
-집행부결정사항을 항상 매도하는 자
-절대비밀보장
-반대세력과의 갈등


-개입유무 확인
현업부서









, 과장
, 반장
고충처리
위원
노무담당부,
과 장
노무담당


현장관리자
-근무중 불필요하 게 잦은 이석
-회식 등에서의 특 이한 발언 내용
-필요이상의 불평 불만
-현장관리자의 개별 면담위주
-필요에 따라 고립 화 유도

지원부서









보건담당
경비원
예비군
담당
통근버스
기사
노무과장 -공상자, 보호동료
대화내용
-향군훈련시 특이 한 발언으로 선동
-퇴근버스내의 대 화내용
-행위의 심자은폐
잠복유의, 암행실시

 

 

B. 대외협력조직 : 대외기관, 대외교섭단체, 인근 거주지역

구 분 협상대상 활동담당자 중점항목 유의사항
대외기관 노동부사무소
경찰정보과


공안분실
노무담당




, 과장
-요원내사시
-신입사원신원
조회의뢰시
-위장침투여부확인
-인근업체 분규
내용사례
-신입사원 행동
의심자신원조회시
불순자리스트 입수
대외교섭
단체

노무관리
협의회
인군업체
상공회의소
기타 단체
공장장
노무담당부, 과장
노무담당
총무과
-매월정기집회참여
-수시방문
-연락망유지
-상호연락체계구축
-사례및 의견교환
-경력조회
-참고문헌,
자료수집
인근거주
지역
파악
동장, 이장


주점, 다방
노무과장


노무과장


총무과
-정보접수확인시


-주민접촉시
-불순집단거주활동 여부
-음성적 모임 동태 파악
-대화 내용 입수 분 석

 

 

C. 준공식적 조직 : /반장친목회, 비공식집단

구 분 활동담당자 참여형태 횟 수 중점항목
, 반장
친목회
공장장
노무담당
, 과장
노무담당자
-재정지원
-간담회 개최
격월
1
-방침설명
-문제점, 애로 청취
-불순조직 연계확산 파악
-역할강조
비공식
집단
노무담당
,과장
노무담당자
-재정지원 -편의제공
-노무부서원 참여
매번
모임시
-구성원 사고방식 및 신참파악
-방향유도(애사심고취)
-불만, 불순자 회유 색출

 

 

D. 비공식적조직 : 인척관계, 향우회, 친목계

구분 활동담당자 활동방법시기 예상항목 유의사항
인척관계 노무과장
노무담당
-문제점 발생 예상
시 개별 접촉
-사외접촉위주
-연대감 조성
-순화, 유도
-정보원 활용
정보원 신분
노출 방지,
적극 보호
향우회 노무과장
노무담당
현장관리자
노조간부
-정보원활용
-개별접촉
-모임일시, 장소
파악
-리스트 입수
-핵심간부 파악
-성향 분석
-최신의제, 감시

친목계 노무과장
노무담당
노조간부
-대화내용 파악
-핵심간부 면담
-과격분자순화유도
-불순자추출, 격리
-노조 집행부와의 갈등여부

 

출처: 노무관리자료집p.81에서 인용

 

 

이상과 같은 노무관리의 그물망은 물론 G사만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일반적인 노무관리의 그물망을 전형화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단지 G사의 경우 노조 집행부를 통한 민주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통한 체계적인 노조개입이 확인되며, 이는 노동조합을 철저하게 회사의 노무관리기구화 하는 건전노조육성 전략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상대적으로 뿌리깊은 어용노조의 존재, 노동자들의 투쟁경험의 일천함 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이 회사의 노무관리의 그물망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점자본의 노사협조주의 육성전략이 사실상 자본에 대한 노동의 전면적인 종속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 조직관리의 다른 한 측면을 이루는 것이 노무관리의 라인화이다. 이것은 바로 현장관리자 및 감독자를 노무담당 요원화하는 것이며, 노무관리를 현장 부서에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관리의 라인화와 인사노무부서의 전문화가 결합되어 총체적인 노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라인관리자가 기본적인 노무관리 지식을 습득하여 라인내 관리대상자의 신상파악 및 정기적인 면담을 행하여 노무관리를 책임지는 것, 라인관리자의 관리범위를 20명 내외로 축소하여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충 및 애로사항을 선행관리할 뿐 아니라, 불순세력의 침투를 사전에 인지하고 미연에 방지토록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G사의 경우 노무관리의 조직적 측면에 있어서 일상적인 노무관리 및 정보수집체계를 제도화 화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업무분담 및 책임을 명확히 하여 정보를 집중시키고 노사분규에 대한 사전예방 및 선행조치를 취하는 데 노무관리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관계관리와 조직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함에 의해 노동자들의 불만 해소와 동기부여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이를 통해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무관리의 대노조관리 측면은 직접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다. G사의 대노조전략은 소위 건전노조육성전략이다. 여기서 건전노조란 자본이 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으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의미한다. 건전노조는 조합원 대중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어용노조와는 달리 조합원 대중에 대한 일정한 정도의 대표성을 갖으면서도 회사에 대해 협조주의적이고 평화적인 대립과 상호공존을 원칙으로 하는 노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건전노조육성전략의 핵심은 개량주의적 노조의 육성이며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독점자본이 채택하고 있는 대노동조합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대노조전략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민주적 반대파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강력한 불신, 간선제에 의해 장기집권하고 있는 노조집행부의 조직력, 통솔력의 부족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들 전투적인 민주파의 진출은 자본으로 하여금 기존 노조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건전노조육성전략이란 변화된 환경 속에서 기존의 어용노조를 강화시키기 위한 자본의 노력에 다름 아니다. 결국 건전노조 육성전략의 내용은 어용노조의 조합원 관리능력을 보강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치밀한 정보관리와 조합내 회사 동조세력의 육성을 통해 전투적인 민주파를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노조전략은 G사 창원 2공장의 쟁의와 금성전선 노조에 대한 자본의 대응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G사는 노사분규대책을 위해 전 종업원에 대한 정보관리 체계를 구축하여 전 종업원의 성분을 분류하고 그를 근거로 하여 각각의 수준에 따라 상이한 대응전략을 취하고 있다. 즉 민주적인 조합원들에 대한 특별관리를 통해 진보적인 노동운동의 기업내 침투를 방지하고, 다른 한편으로 회사정책에 대한 동조세력을 육성하여 이를 기반으로 평상시에는 정보관리, 분규시에는 노노투쟁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사분규가 발생하는 경우 이들 동조세력으로 하여금 농성을 지도하게 함으로써 조기에 협상을 타결 짓고, 협상 타결 후 민주세력의 핵심부분을 제거한다. 동시에 조합원 대중에 대해서는 성분을 재분류하고 각각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통해 노조내 민주파의 대중적 기반을 와해시킨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G사의 노무관리 전략은 강제와 동의의 체계가 결합되어 있다. 강제와 감시 체계의 경우 치밀한 정보관리 및 라인관리를 통해 진보적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노사분규에 대한 선행관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강제와 감시 체계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이며 그를 통해 노동자들의 기업의식을 강화하고 노사협조주의의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2. P

 

 

P사는 기업체의 엄청난 매출액과 순이익 규모,산업의 전략적 파급효과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최대의 전략사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점자본의 노사관계에 대한 전략연구에 있어서도 P사는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점하고 있다. 실제로 P사는 이미 설립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노동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관료적 통제의 기업들을 도입해 왔으며, 이와 같은 고도의 통제기법들은 기업조직 뿐만 아니라 방대한 연관하청기업체, 그리고 지역사회 전반에 대해 대단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P사의 노무관리에 대한 연구는 하나의 특수한 사례연구를 넘어서 독점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구조를 총체적인 측면에서 규명한다는 의미에서 커다란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전략사업장으로서의 P사의 노동조합 전략은 다음과 같은 주요한 배경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자본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P사는 한국의 급속한 자본축적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기업으로서 자본의 물적 기반이 어느 기업보다 확고히 확립되어 있다. 또한 경영의 성격에 있어서 P사는 형식적으로는 공기업의 형태를 취하면서 자본의 소유가 이른바 국민주의 형태로 분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박태준을 비롯한 군출신 인사들과 전문적인 소수의 전문경영인 집단들이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P사는 전형적인 거대 관료독점자본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본의 특성은 고도의 과학적, 관료적 통제와 함께 권위주의적, 병영적 노동통제가 결합되어 있는 조직의 특성을 통해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P사는 단기간의 급속한 고축적과 엄격한 권위주의적 경영방식을 결합하면서 이미 87년 이전부터 독점기업의 과학적이고 관료적인 노무관리 전략들을 체계화시켜 왔다. P사가 기업의 설립 단계에서부터 과학적 직무분석과 노무관리 조직을 노동의 저항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일본으로부터 이식해 왔다. 노동에 대한 과학적 관리, 관료제적 통제기구와 결합한 내부노동시장체제, 기업체의 전면적인 주도에 의한 숙련과 노동력의 형성, 자동화/전산화의 급속한 도입과 합리화, 그리고 취약한 노무 관리의 내부하청에 의한 전가전략 등은 P사의 경우 노동의 저항이 있기 훨씬 이전에 일정하게 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P사의 이와 같은 특징은 후발형 산업화의 과정에서 후발주자가 갖게 되는 일종의 후발효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본은 노동이 저항에 직면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에 대비한 철저한 노무관리 체제를 확고히 함으로써 노동과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후발효과를 지니는 독점자본들은 노동자들의 시행착오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었으며, 국가의 강력한 후원 하에 자본이 훈련시킨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비록 국제분업구조 속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자본은 기술적, 조직적 발전단계들을 수입기술과 시설에 의해 한꺼번에 뛰어넘으면서 선진적 생산기술들을 선택적으로 도입하였고, 단기간에 거대한 관료적 경영조직을 만들었다.

 

P사가 이와 같은 후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전후 철강산업에 있어서 국제분업구조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후 철강생산 기술이 표준화되고, 선진국에서의 고임금과 공해비용 등으로 인해 구상과 기획기능을 제외한 비숙련작업공정이 신흥공업국으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P사는 보통강 분야를 중심으로 소품종 대량생산주의를 통해 국제적 경쟁력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P사의 경우 초기단계에서 생산시설과 기술을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해 왔었기 때문에 생산조직과 노무관리 역시 상당한 부분 일본의 철강대기업의 지배방식의 기조가 그대로 이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쨌든 최신예의 대규모 생산설비가 도입되고, 숙련노동자들의 운동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독점자본은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전적으로 기업이 주도하는 노동력의 재생산 기제가 형성되게 된다. 이와 같은 조건은 처음부터 독점자본이 노동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며, 노동의 저항이 조직화되지 못한 채 자본 주도의 일방적인 노동조직이 형성된 것은 P사가 철강생산 분야에서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

 

거대철강기업으로서의 P사의 노무관리가 갖는 또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하청제도를 통한 지역내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다. P사는 이미 조업 초기부터 일본의 철강독점기업들의 지원 하에 일본의 독점대기업과 유사한 구내하청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청생산은 P사를 중심으로 포항 일대의 대다수의 기업들이 협력’, 혹은 연관업체로 재배치시키는 효과를 낳았으며, P사는 이와 같은 자본관계를 통해 지역내 자본과 노동력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청제도의 도입은 노동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분할지배의 효과를 갖게 된다. P사과 연관된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기술적 숙련의 차이보다는 노동시장에 대한 자본의 의식적인 차별화 정책 때문에 거의 모든 노동과 생활상의 조건에서 P사 본공과 분리되어 의식적 차별대우를 받게 되었다. 포청 본공들의 경우 우선 노동과정 그 자체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유해하고 위험하며 열악한 작업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주로 맡고 있으며, 본공들은 기계화, 전산화된 컨트롤 룸에서 감시노동의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또한 P사는 임금수준과 생활조건 역시 하청업체 노동자들과의 철저한 차별화를 통해 독점자본의 정규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계급 내부의 엘리트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하려 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자본의 차별화 정책은 본공에 대해서는 일종의 허구적인 선민의식엘리트의식을 주입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노동자들에 대한 의식적 통제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제는 철저한 권위주의개인주의의식을 뿌리박는 것이다. 87년 이후 일정한 부분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독점자본은 박태준에 대한 거의 신격화에 가까운 의식적 지배와 고도의 관료적 통제를 결합하면서 권위주의 문화의 체제화를 항상적으로 유도한다. 또한 이와 함께 자본은 노동자 개개인을 파편화/분산화 시키기 위해 내부노동시장에 대한 관리체제를 정비해 옴으로써 경쟁적인 문화와 개인주의 의식을 육성해 왔다. 권위주의적 의식과 철저한 개인주의의 결합은 기업에 있어서 전위주의적 기업지배의 의식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P사의 노무관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변수의 하나는 국가 권력과의 관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독점자본의 노무관리에 있어서 국가권력은 빼놓을 수 업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욱이 처음부터 국가자본의 형태로 시작된 P사의 경우 자본과 국가권력과의 관계는 거의 하나로 일제화 된 협력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사와 같은 전략적 핵심사업장에서의 국가권력은 사실상 자본의 외곽적 노무관리를 전담하며, 자본과의 항상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자본의 역할을 보조한다. 특히 P사 처럼 하나의 거대 독점자본이 포항이라는 도시의 경제, 사회, 시민생활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 자본은 지역의 국가권력자체에 대한 거의 완벽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역의 치안기구들은 포항지역의 얼마 안되는 진보적 노동운동 세력에 대한 항상적, 일상적 감시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에서는 안기부, 보안사, 경찰, 노동부 등 거의 모든 국가기구들이 독점자본과 공조체제를 맺고 있다.

 

포항이라는 지역사회에서 P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놓고 볼 때 적어도 지역적 차원에 있어서 독점자본은 국가기구 자체를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독점자본은 방대한 현장의 노무관리 조직 이외에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외곽적 노무관리를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자본의 실질적인 지역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본의 지역적 지배구조는 뷰러위(Burawoy)가 말하는 내부국가(internal state)’형 지배구조와 가장 근접한 독점의 노무관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III > 독점자본의 지역적 지배구조

 

 

 

 

 

 

 

 

 






독점자본=국가기구





















지역 독점자본





















지역적 지배와 운영의 기구=지배정책의 수행 󰋽󰠧󰠧󰠧󰠧󰠧󰠧󰠧󰠧󰋼 지역 국가기구































자본의 경영=노무관리 조직과 기구















󰠑󰠚󰠚󰠚󰠚󰠚󰠚󰋼
󰠛
󰠛
󰋿
자본의 기업간
지배기구
󰋽󰠧󰠧󰠧󰠧󰠧󰠧󰠧󰋼 자본의 기업내 지배
기구=노무관리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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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노동자 계급의 계층적 차별화




















노동력의







기구

노동력


계층성의


재생산
󰋽󰠚󰠚󰠚󰠚󰠚󰠚󰠚󰠚󰠚󰠚󰋼
독점 대기업의 노동자 관리조직
대기업 본공 중심의 기업별조합

󰋽󰠚󰠚󰠚󰠚󰠚󰠚󰠚󰋼










󰋽󰠚󰠚󰠚󰠚󰠚󰠚󰠚󰠚󰠚󰠚󰋼
협력 및 연관업체 노동자 관리
조직과 사외공의 기업별조합

󰋽󰠚󰠚󰠚󰠚󰠚󰠚󰠚󰋼




노동력의 이동



󰋽󰠚󰠚󰠚󰠚󰋼
/영세업체 노동자 대중과 지역 노동시장
󰋽󰠚󰠚󰋼

 

지금까지 우리는 독점자본의 축적과정에서 국가기구와 긴밀하게 결합된 대규모 독점자본이 노동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효과적인 저항이 없이 고도의 관료적 노동통제의 물질적, 제도적 수단들을 마련하면서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하나의 지역사회 내에서 노동에 대한 통제 질서를 확립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흔히들 P사의 경우를 지적하면서 그와 같은 고도의 독점적 지배구조는 한국과 같은 후발산업화 국가의 대기업중심 노동조직 체제에서 독점자본 하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특수한 경우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P사의 지역적 지배구조는 한국의 다른 독점자본에 대해서도 결코 예외적인 케이스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의 지배구조가 형성되고, 기업사회가 한 지역사회 전체의 운명을 지배하는 구조는 독점자본의 전형적인 지배구조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자본의 지배력에 있어서 일정한 편차는 존재하지만, 독점의 이와 같은 지배구조는 단일기업 뿐만 아니라 성격이 다른 기업들이 함께 존해하는 지역에서도 거의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P사는 거대 철강자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독점자본의 노동에 대한 관료적 통제와 공급의 기제들을 장악함으로써 노동력의 숙련형성과정 자체를 초기부터 장악하고자 했다. 이미 고도로 자동화, 전산화된 설비의 도입으로 숙련에 대한 노동의 통제력을 박탈한 상태에서 P사는 자체의 공고사내직업훈련,기업의 내부교육과 훈련체계의 확립을 통해 노동력의 형성과정을 주도하였다. 이와 같은 자본의 전략은 노동자들 중심의 계급 사회’(class society)의 형성 가능성을 초기에 차단하고, 기업의 주도에 의한 기업 사회속에 흡수하고자 하는, 이른바 'P사맨'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력의 사회적 통합전략 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70년대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이와 같은 P사의 노동자 통합전략은 다른 독점자본들에 비해 외형상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력의 형성과정에 대한 독점자본의 철저한 계획적 관리와 지배, 권위적 노동통제, 독점자본의 단기간의 고축적 등은 포항이라는 지역사회를 독점자본의 아성으로 변모시켰고, 이처럼 독점이 구축해 놓은 속에서 노동자들은 고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독점의 강요된 직장공동체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자율적 공동체를 빼앗긴 채 침묵해 왔다.

 

그러나 이어 같은 독점의 지배구조도 87년 무렵부터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저항에 직면하기 시작하였다. 독점국가의 성곽에 최초의 저항은 지역 지배구조의 가장 약한고리였던 하청기업과 연관업체에 종사하던 사외공들 이었다. 숙련의 형성과정이나 노동력이 성격에 있어서 거의 차이가 없던 사외공들은 단지 P사의 본공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인해 지역 노동시장의 말단에서 열악한 노동조건과 권위적, 비인격적 노동통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하면서 이 지역에서도 노조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하청, 연관업체들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불과 2년 사이에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조합이 결성되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폭발적 조직화와는 별도로 P사 자체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화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P사 내의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은 85년 무렵에 첫번째 노조결성 시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수의 시도에 그쳤던 조합운동이 실패하면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은 87년에 들어서면서 보다 조직적인 흐름으로 발전한다. 그러자 독점자본은 지금까지의 노조에 대한 불인정 정책을 수정하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조합운동을 주도하기 전에 회사의 노사협의기구, 장기근속자, 주임/반장들이 중심이 되는 노동자 상층중심의 조합결성을 유도하게 되었다.

 

주지하는 바 P사와 같은 대규모 중화학, 남성사업장들의 경우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노동과정에 견고히 뿌리를 내리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연령, 근속, 직위 등에 따라 일정한 계층구조를 형성한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숙련을 철저히 박탈하면서, 기업의 관료적 직제와 결합된 관료적 노무관리, 승진체계와 내부노동시장 등을 통한 기업내 통제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생산직 노동자들 내부의 일정한 층화구조를 형성한다. 일단 조합의 결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자본이 조합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수단은 바로 이와 같은 기업주도의 직제-권위관계를 조합에 대한 통제에 그대로 이식시키는 것이었다.

 

P사는 이와 같은 자본의 1단계 조합통제 전략을 일단 조합위원장의 간선제와 민주파 조합원들을 격리시킨 상태에서의 제한적 선거를 통해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은 교섭의 초기과정에서부터 노동의 행동반경을 엄격히 통제하고, 교섭과정에서 평화협약을 강제함으로써 조합에 대한 길들이기 작업을 실시하였다. P사 본공과 하청업체의 사외공들간의 연대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노총 산하의 금속노련 등과의 교류조차 철저히 제한하면서 연대교섭, 연대투쟁을 기업별교섭, 기업별투쟁으로 유도하였다. 이와 함께 조합의 간부들에 대해서는 독점자본의 물리력을 바탕으로 경제, 사회적 유인들을 제공함으로써 기업별조합 간부의 귀족화를 유도하였다. 또한 이와 동시에 조합원 대중들에 대해서는 집단적 움직임이 가져올 결과들에 대한 엄청난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취하면서 다른 이면에서는 독점적 초과이윤을 바탕으로 한 상당한 수준의 임금인상 및 제반 복지정책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독점의 정책들은 국가기구와의 긴밀한 협조관계 속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구상된 것으로, 그러한 의미에서 사실상 독점과 국가기구는 하나의 기구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3. D그룹

 

 

D그룹의 노무관리 전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87년 이후 노사관계의 재구축 과정에서 자본의 일정한 선도적 입장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D그룹 측이 단체교섭의 과정에서 제시한 원칙들은 이후 자본의 중요한 교섭전략으로 신속하게 파급되면서 패턴화하고 있다. 따라서 D그룹의 노무관리 전략에 대한 분석은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전략을 파악함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 제도에서 D그룹이 보여주고 있는 이와 같은 현실적 위치는 그 주력기업들이 한국자본주의의 종속성과 함께 기계, 전자, 자동차 등 일정한 표준적 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경영주 1인에 의한 소유구조의 집중성과 친족경영체제가 약하며,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부실화된 기업들을 국가의 특혜지원 속에 인수함으로써 전형적인 종속적 독점자본의 축적행태를 보여주고 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결성되어 있던 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노조관리의 경험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있었으며, 특히 87년 이전부터 중요한 분규를 경험하면서 노조에 대한 다양한 대응전략들을 경험해 왔다는 자본의 일정한 특성을 반영한다.

 

자본의 이와 같은 성격과 함께 D그룹의 노무관리 전략을 이해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변수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비교적 잘 조직화된 사업장내 민주파의 존재이다. D그룹의 노조를 민주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다른 재벌기업들과는 달리 87년 이전에 이미 상당한 경험이 있어 왔으며, 민주파의 조직적, 의식적 역량을 다른 어느 그룹보다 높은 수준이다. 조합내 민주파는 조합의 관료적 운영과 협조주의적 타성에 젖어 있던 기존의 집행부에 대해 끊임없는 위협이 외어 왔고, 조합원 대중들의 일정한 지지에 기초하면서 사실상 독자적인 활동경험들을 통해 언제라도 집행부에 대항한 강력한 목적의식적 조직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노조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합내 이중권력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선택된 것이 87년 이후의 노조에 대한 신전술을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자본의 신전술은 궁극적으로 조합내 민주파의 배제를 주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87년 이전까지 D그룹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개량적 요구조차 철저히 탄압해 왔다. 85D그룹 어페럴의 노동운동을 공권력의 개입을 통해 철저히 파괴한 사건, 그해의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D그룹 자동차 파업투쟁에서 선진적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대량으로 해고, 구속시킨 사건 등은 이와 같은 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D그룹의 노조관리 정책은 87년을 계기로 부분적 변화를 나타냈다. D그룹의 노조에 대한 관리전략이 일정하게 수정된 직접적인 계기는 87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던 D그룹자동차 부평공장에서의 장기간의 투쟁이었다. 당시 D그룹은 공권력을 투입시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무자비하게 분쇄한 다음 무려 98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을 구속시킨다. 그러면서 독점자본은 민주파의 핵심조합원들이 대부분 구속된 상태에서 노조위원장 직선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이 통제 가능한 위원장을 입후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1단계 전략을 관철한다. 당시 D그룹의 김우중은 산업평화와 건전한 노사관계의 육성을 위해 대표성 있는 강력한 노조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5년 이상 근속, 5백인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자에 위원장 후보자를 국한하는 조건으로 위원장 직선제 요구를 수용했다. 노동조합 민주파의 핵심이 제거된 가운데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대규모 사업장에서 간선제였던 조합위원장의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바꾸고 회사가 통제 가능한 인물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면서 표면상 신전술의 1단계 조치가 관철된 것이다.

 

D그룹의 신전술이 지향하고 있던 핵심적 내용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노조를 장악하여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 즉 통제 가능한 인물을 합법적 형식을 거쳐 당선시켜 조합내 민주파의 입지를 서서히 분열약화시킴으로써 노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자본이 노조 자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집행부에 대항하는 강력한 조합내 민주파가 조직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본이 선택하는 조합에 대한 자본의 철저한 분할통치전략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D그룹이 이러한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실행했던 첫단계 구상은 한편으로는 공권력을 통한 통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용적 집행부와 회사의 주도에 의한 개량적 요구의 수용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D그룹은 제한적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집행부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집행부 주도의 파업, 일정한 기간에 걸친 고율의 임금인상, 각종 종업원 복지 구상의 실행 등을 병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본의 구상은 자본의 원칙이 관철된다는 한계를 견지하는 가운데 실행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88년의 임투에서 D그룹은 한편으로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노조 집행부를 통해 관철하려 하면서 임금인상을 통해 기존 집행부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 그 대신 집행부로부터 조합원들의 요구를 입금인상에 국한시키고 연대투쟁을 거부하는 등 노동자들의 진출을 막는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일단 노조가 민주파에 의해 장악되거나 자본의 의도대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회사는 통제와 탄압을 늦추지 않았다. D그룹정밀에서 무려 150일 가까이 진행되었던 장기파업, 그리고 폐업위협을 불사한 D그룹조선의 교섭전략에서 우리는 이른바 자본이 규정하는 건전노조의 범주를 벗어난 노조의 민주화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철저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D그룹은 통제 가능한 노조집행부에 대해서는 입지강화를, 통제 불가능한 민주노조에는 통제전략을 취하면서 막후에서 노동자들간의 분열을 조장한다. 회사내의 공공연한 우익써클의 조장, 장기근속자 중심의 노동문화추진위원회’, 과거의 노조인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의 막후지원 등은 조합내 민주파를 약화, 고립시키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건전노조 육성전략’, 혹은 노조개량화 전략으로 표현되는 이와 같은 D그룹의 노조관리 전략의 핵심은 노동과의 교섭과 협상 과정에서 자본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제한된, 경제 및 제도적 요구들을 수용하고, 회사가 통제 가능한 노조의 입지와 주도권을 강화시켜 나아감으로써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토대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D그룹의 전략은 실제로 87년 이후의 노사분규와 교섭의 과정에서 대체로 관철되는 양상을 보인다. 88년 봄 D그룹조선의 임금협상에서 D그룹이 관철시켰던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은 이후 파업에 대응한 자본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무기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사용되었으며, 896월에 있었던 D그룹조선의 임금협상에서도 D그룹은 적자기업의 임금동결원칙을 국가권력과의 합작을 통해 관철시킨 바 있었다.

 

이처럼 D그룹이 자본 주도의 관행제도적 장치들을 일정하게 관철시킨 배경에는 기존의 어용노조가 갖지 못했던 대표성을 제한된 직선제를 통해 일정하게 수용하면서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틀을 고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자본의 원칙과 제도적 장치들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이 조합의 운영과 조직을 장악하게 될 경우 D그룹은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노조민주화의 핵심세력들을 조합원 대중과 분리시킴으로써 자본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조합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본의 기본적 전략의 기조는 87년 이후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다.

 

D그룹의 경우에도 노무관리 전략의 기조는 개별기업 차원을 떠나서 그룹의 '기획실' 차원에서 마련되고, 구상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는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조가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구상하고 실행하려는 노무관리 전략의 기조와 구체적인 내용들의 주요한 사항들을 기존의 자료들에 의거해 다시 정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IV> D그룹의 노무관리 전략체계

 

현장수준의 노무관리의 기본
방향 : 노무관리구조의 확립
그룹 차원의 대응전략 노사관계관리의 방향
(대노조전략)


󰏫 현장 중심의 노무관리


-1차노무관리 : 반장중심


-2차노무관리 : 과장
전문부서 : 공장 노무부서


-조장의 자질 강화


-과장의 노무관리 능력 배양


󰏫 교육훈련의 강화


신입사원교육 강화


전자·전기 관련 계열 회사 들간의 노무관리
교류 강화/일관된 노무관리 정책의 추진


관련회사 노무관리
정책결정자 모임을 통한 그 룹 차원의 대응전략 수립.



󰏫 회사내부 조직의 측면


노조실무자 교육 강화
단체교섭 능력의 강화
경제문제 중심의 교섭


노사분규 사전예측 및
정보조직의 강화
-상황실 운영
-연관부서 실무자회의
-연간 정보비 노동자
1인당 4천원 책정


비공식조직의 관리 강화
-각종 서클 파악
활동내용 관리
-회사주도의 각종
소모임 지원
(우익단체 육성)

 

 

 

 

 

 

 

 

 

 

 

 

 

 

 

 

 

 

 

 



󰏫 노무능력 강화


노무관리부서의 전문 인력 양성


공장간 노무관리 담당자교 류


사내교육 강화





󰏫 인간관계관리의 강화


인간관계 관리의 강화를 통 한 기업주의 의식 강화


정기적 면담제도를 통한
인간관계의 조직적 관리
통제


회사 주요 경영자료 설명


고충처리제도 활성화



󰏫 회사외부 조직의 측면


공권력과의 긴밀한 협력
-노동부
-경찰(대공, 수사, 정보)
-안기부 및 보안대


노동운동단체 동향 파악
-재야단체 동향
-선진노동자들에 대한
개별 관리
-관련기관과의 수시
접촉
-해고자 감시
노사분규는 제3자에
의해 일어난다



󰏫 복지정책


무주택자 주택마련 지원


우리사주 조합운영 확대


식당관리 개선


모범사원 산업시찰


󰏫 노조의 관리


노사협조적 노조로의
방향성 관리
-제도권노조 유도
-외부와의 연대에 대한
철저한 통제


노조의 개량화
-직선제 위원장 선출
-관리 가능한 위원장
선출로 회사입장 관철



󰏫 노조관리의 중심목표


통제 가능한 기업별조합의
정착
노조민주화세력의 입지
축소
노사협조주의의 정착
3자와의 연대차단


󰏫 노조와의 중심적 교섭전략
무노동 무임금
민주노조 불인정
연대활동 차단
적자기업의 임금동결


 

자료:88년도 노무관리 대책자료, 88년도 분규관련 D그룹의 입장,

88년 노사분규의 중간분석등에 의거해서 작성.

 

 

D그룹의 노무관리 전략체계에 대한 앞의 분석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D그룹의 조합관리 전략은 한마디로 노동자들에 대한 철저하고 장기적인 분할지배를 통한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제도화와 자본주도의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권'의 확립전략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D그룹의 전략은 이미 P사처럼 노동에 대한 전일적 지배체제를 단기간에 구축하기 힘든 물적 조건과, 조합내 민주파의 강력한 조직적 견제라는 조건 속에서 자본의 입장을 장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오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때문에 자본은 노사협조적 집행부와의 교섭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교섭들을 통해 자본의 원칙과 경영권들을 하나 하나 확립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조합내 민주파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대중과 결합된 현장투쟁들을 통해서 노동자적 관점에 입각한 현장의 민주적 관행을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을 극복하면서 민주파의 통일된 구심력과 대중적 지도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우리는 특히 이 과정에서 노동자적 관점, 노동자들의 주도에 의한 투쟁과 교섭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지난 1-2년간 D그룹계열의 회사들에서는 자본과 노동간의 역관계를 시험하는 매우 중요한 교섭과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D그룹은 개별자본 수준이 아닌 총자본 수준에서 치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원칙들을 제출해 왔으며, 실제로 상당한 물적 손실을 감수하는 투쟁 속에서 자본의 중요한 주도권’ (initiative)고리들을 장악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의 일관된 입장에 비해서 노동자들의 역량은 제한되어 있었으며, 기업별 교섭과 노사협조적 집행부의 불투명한 교섭, 그리고 분할지배의 결과 자본에 의해 계속해서 중요한 고지들을 선점당해 왔다. 또한 자본은 자신들이 선점한 논리와 원칙들을 계속해서 전국의 다른 사업장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D그룹에서의 교섭은 노조가 이미 조직화된 사업장일수록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점자본 하에서의 기업별교섭은 외형상 기업별교섭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자본은 계급으로서 자신들의 일관된 계급적 입장들을 관철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D그룹은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대응전략에 있어서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다.

 

 

 

4. H그룹

 

 

H그룹의 노무관리전략은 다른 재벌기업에 비해 노무관리 부재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노조탄압의 양상을 보여 왔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자본측의 저돌적인 노무관리 전략은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권리의식의 성장에 더하여 강력한 투쟁의지를 불어넣어 주었고 노동운동의 급속한 질적 발전이라는 결과를 가져 왔다.

 

H그룹이 처해 있는 조건은 노무관리와 노동운동의 전개양상에 일정한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즉 단순히 산업의 성격 이외에도 동일계열사들의 지역내 집중과 그룹수준의 공동대응, 그룹총수에 의한 절대적인 의사결정구조, 다른 어느 독점기업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거대공장에로의 노동자들의 집중 등의 모든 측면들이 H그룹의 노동운동의 전개양상과 노무관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의 성격과 관련해서 볼 때 H그룹은 국내 제일의 독점자본으로써 대부분의 독점자본이 그러하듯이 창업주 개인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기업경영에 대한 창업주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왜소화되어 있다. 이러한 경영권의 집중은 노무관리의 영역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여 대노조전략과 노동쟁의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개별회사별 노무관리의 차이점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룹계열사의 대부분이 동일지역내에 집중되어 있어 그룹수준의 노자대립이 현실적인 의의를 갖게 되는 객관적인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H그룹의 계열사들이 동일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자본의 대응전략이 그룹수준의 절대권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그룹수준의 투쟁이 갖는 의미가 다른 어느 독점자본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룹수준의 공동대응과 그룹내 노조들간의 연대투쟁이 투쟁의 주요한 고리가 되고 있다. 더우기 H그룹은 자본의 성장과정에 있어서도 건설, 조선 등 위험부담이 크고 상황에의 기민한 적응력이 요구되는 업종을 통해 성장해 온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성장과정은 인력관리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결과 군대식 규율과 병영적 통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이러한 자본의 인력관리 방식은 노동자투쟁을 통해 그 한계가 명확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무관리와 쟁의전략에 있어서 이러한 기조는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H그룹의 노무관리방식의 전체적인 틀은 그룹수준에서 공동으로 결정되어 집행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생산현장에서의 일상적인 노무관리는 역시 개별회사가 속한 산업의 축적능력과 노동과정의 특징, 그에 따른 노동력구성의 특수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H그룹의 경우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주력업종인 자동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한 연관산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동차와 조선산업의 노동과정상의 특성이 노무관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노무관리 부재 혹은 강압적 노무관리라고 일반화해서 말할 수 있는 H그룹의 경우에 개별기업별 차이는 산업의 성격과 노동과정상의 특성의 차이에 의거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동일한 지역적인 조건과 기업규모에도 불구하고 수차례에 걸쳐 격심한 노동쟁의를 겪은 현대중공업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H자동차의 차이는 노무관리전략의 차이라기 보다는 양 산업의 노동과정의 차이가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상이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대규모 일관조립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노동과정과 경험적 숙련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노동통제에 의존하는 노동과정상의 기술적 차이가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친 것이다.

 

H자동차의 노동과정은 포디즘의 전형적인 형태로써 콘베이어시스템을 이용한 일관조립 생산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생산의 전문화, 표준화, 자동화 등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진전되어 있다. 포디즘적인 노동과정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직무의 세분화와 단순화를 진전시켜 노동자들에게 단순반복적인 실행만을 강요하고 컨베이어의 시간조절로 작업속도는 기계에 의해서 통제된다. 따라서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전체공정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고 세분화된 단순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조선과 같은 비일관작업의 경우에는 일일이 개인의 작업량과 속도를 감시하고 독촉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개인별로 노동강도를 통제해야 하는데 비해, 일관 작업의 경우에는 노동의 강도가 기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각 개인이 단지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 만 감독하면 된다. 더욱이 일관작업이 진행될수록 노동은 단순화되고 대체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일관작업하에서의 탈숙련화는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교섭력을 증대시켜 주며 회사에 대한 개별노동자의 권력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컨베이어에 얽매인 단순작업의 반복은 작업자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작업자간의 정적인 연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상대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그리하여 일관작업은 작업자들간의 작업에 관한 대화마저 제거해 버림으로써 정적인 인간관계의 형성을 제약하며 노동자들의 고립성과 개인주의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동차에서의 일관작업은 작업의 지시와 감독을 용이하게 해줌과 동시에 노동자의 숙련을 박탈함으로써 통제의 기초조건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일관조립의 노동과정에 비하여 조선산업의 비일관조립의 노동과정은 이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산업은 제조공정의 자동화가 곤란하기 때문에 작업자의 경험적 숙련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생산품이 대형선박이기 때문에 높은 근력을 필요로 하며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재해의 위험도가 높은 대신에, 일에 대한 작업자의 자율성이 높아 작업자에 대한 개별적인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며, 개별작업자의 작업목표달성은 위계체계에 의한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통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과정의 성격은 노동자들에게 장인적 숙련을 요구하고 있으며, 노무관리방식에 있어서도 기계에 의한 기술적인 통제양식 보다는 작업단위별로 작업자들간의 협력이 중요하게 된다.이러한 노동과정상의 차이가 대노조전략에 있어서는 별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 기업에 있어서의 노동조합운동의 양상을 구별짓는 객관적인 조건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H그룹산하의 두 주력기업에서의 노동과정상의 차이가 노동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검토하였다. H그룹의 노무관리가 87년이후에도 기본적으로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노무관리의 기조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2년여 간의 쟁의의 경험은 현장수준에서의 과거의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규율과 통제양식을 무력화시켜 나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의 과정은 1)자본의 지배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킴에 의해서 기업내 일상적인 통제방식의 변화를 초래했고, 2) 경영자들로 하여금 노동쟁의를 염두에 둔 노무관리를 시행케 함으로써 과거의 강압적인 노무관리의 대폭적인 후퇴를 가져왔다. 3)노조의 결성에 따라 개별화되었던 문제들이 집단적인 문제로 전화됨으로써 관리자들에 대한 개별노동자 들의 발언권이 대폭 확대되었다.

 

따라서 H그룹의 새로운 노무관리정책이 아직 체계적인 형태로 구사되고 있지 못한 조건에서 과거의 억압적인 관리체계가 무력화됨으로써 자본의 노동통제의 틀이 일정 정도 와해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노무관리의 기축을 이루었던 조반장체제의 권위가 추락하고 동요하고 있고 인사고과와 임금체계 등에 대한 노조의 발언력이 강화됨으로써 이러한 수단을 통한 자본의 노동자지배의 폭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작업현장 노무관리의 전제적이고 억압적인 통제가 와해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관리방식은 아직 체계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있다.

 

H그룹의 노무관리는 일상적인 노무관리 전략에서보다 오히려 노동쟁의에 대한 대응전략에 있어서 일관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쟁의에 대한 대응전략이 현장에서의 일상적 노무관리와는 달리 보다 높은 그룹수준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며, 개별기업수준의 전문경영인들과 달리 그룹의 의사결정구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본 소유주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전제적인 노사관계의 틀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쟁의에 대한 H그룹의 대응양식은 일관되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975년 현대조선소 폭동에 대한 대응에서 부터 87년 울산지역 노조결성투쟁에 대한 대응, 88년 현대건설의 노조결성을 방해하기 위한 위원장 납치, 현대엔진의 노동쟁의에 대한 비타협성과 물리적인 진압, 89년 현대중공업의 노동쟁의에서 보여준 폭력과 테러, 노노투쟁의 유도와 공권력개입에 의한 강제해산 등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사회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왔다. 이와같이 H그룹의 노동쟁의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은 1)노동조합에 대한 불인정, 2)노동조합의 어용화와 노무관리기구화, 3)민주적인 노조의 정상적인 노조활동에 대한 방해와 노노투쟁의 유도, 4)노동쟁의의 장기화를 빌미로한 공권력개입, 5)공권력에 의한 민주적인 지도부의 제거와 회사에 의한 지도부의 재편 이라는 수순을 밟아온 노조 전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탄압일변도의 대응전략은 병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업문화가 팽배해 있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기업의식을 고무시킬 수 있는 동의의 체계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도 연관되어 있다. 노사협조주의를 육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노무관리전략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노무관리 및 노조전략을 일정정도 수정해야 하는데, H그룹의 경우 오히려 노사간의 권위적인 관계를 무리하게 강제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능력이 증대되는 만큼 자본의 물리적 강제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전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국내제일의 독점자본의 자신감과 노사관이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쟁의에 대한 대응전략에서 자본의 가장 주요한 관심은 자본 우위의 노자간 역관계를 가능케 하는 그룹내 연대의 차단과 개별기업 수준으로의 노조의 고립화에 놓여 있다. 이것은 그룹내 계열사들의 연대를 차단하고 개별기업 수준으로 노조활동을 고립화시키는 전략이 관철되는 한 일정정도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자본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 위에서 자본이 선택하고 있는 전략의 핵심은 조합내 민주파를 고립화시키는 것이고 그 양상은 노조가 자본의 통제 가능 범위에 있는 노조인가, 그렇지 않은 민주노조인가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대체로 노동자들의 투쟁열기를 수렴하고 있는 민주노조의 경우에는 단체교섭이나 임금협상에 대해 소극적이고 무성의하게 이끌어 감으로써 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고 집행부의 입지를 약화시키려고 시도한다. 그 결과 조합이 쟁의상태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주요하게 사용되었다. 1) 노조간부에 대한 법적, 행정적 고소고발, 2) 제도언론을 통한 광범위한 여론조작과 이데올로기공세 (노노투쟁과 폭력과격), 3) 농성노동자와 비농성노동자의 분리 및 쟁의장기화를 통한 지도부의 고립화, 4) 장기쟁의로 인한 강경온건파의 대립과 구사대를 이용한 노노투쟁 유도, 5) 쟁의장기화로 인한 생계압박 및 과격폭력세력에 의한 생산차질을 빌미로 한 공권력 개입, 6) 공권력에 보호에 의한 생산정상화와 노조내 역관계의 재편성 등이다. 쟁의에 대한 공권력 개입은 정치국면의 양상과 사회적인 계급역관계에 의해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H그룹의 경우 쟁의의 양상을 노자간의 물리적인 대결로 끌어가 공권력개입을 필연화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물리력을 독점자본의 노사관계 해결에 적극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국 H그룹의 경우 다른 독점자본에 비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체계적인 노무관리전략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단지 두 주력기업의 축적능력과 노동과정에 따라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반면 노동조합운동의 성장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욕구분출에 대해서는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세력의 성장을 물리적으로 제압함으로써 자본에 대한 노동의 전면적인 종속을 관철시키려는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V. 결론 : 노동운동에의 함의와 과제

 

 

지금까지 우리는 독점대기업에 있어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자본의 대응전략들을 4개 기업집단들을 통해서 정리해 보았다. 물론 이들 4개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노무관리 전략의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들은 여타의 자본에 대한 영향력의 정도나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패턴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분석을 통해서 정리된 바와 같이 87년 이후 독점자본은 노동운동에 대한 분명한 전략적 원칙을 유지하면서 자본의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전술의 내용들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히 도식적인 수준이지만, 우리는 87년 이전과 이후에 나타난 자본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대응의 전략적 기조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V > 87년 이전과 이후의 독점자본의 전략적 노무관리의 비교

 

비교의 항목 87년 이전의 전략 87년 이후의 전략


계급적 지형의
변화






국가권력과의
관계




생산조직의 특성과
자본의 축적정도










소비영역과 노동
시장의 포섭정도








노동운동에 대한
전략의 기조


자본의 절대적 우위/
노동조합운동의 부재






국가권력의 물리적 통제와
외곽적 규제에 의존한
노무관리
대량생산체제 하에서의
노동시간의 연장, 저임금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
독점자본 중심의 대량
생산체제의 확립


노동생산성 이하의 절대적
저임금/기업폐쇄적 노동
시장의 미발달






노조 자체의 불인정
노동운동 자체에 대한
철저한 탄압과 기존
노조의 어용화





대기업 남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의
핵심층 형성/노조운동의
활성화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력
자본주도의 노무관리의
내용강화


절대적 잉여가치 추출의
한계/대규모 고축적 업종
중심의 실질적 포섭 지향
대량생산체제의 고도화,
공장자동화의 일정한 진전




대기업 남성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인상/기업간
임금격차의 확대경향
기업폐쇄적 노동시장의
형성 가능성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육성/개량적 기업별조합의
인정/기업별조합의 틀을
넘어서는 연대활동과
조직에 대한 철저한 차단

 

 

노조 자체를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지형과, 종속적 독점자본주의라는 축적조건 하에서 자본이 추구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전략적 노무관리의 기본적인 목표는 결국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정착을 통한 자본주도의 노사관계 관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독점자본은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이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수단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추구함에 있어서 국가와 자본은 완전히 일체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독점자본은 이러한 과정에서 축적에의 위기를 맞거나 자본의 의도를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지금까지의 수단들을 포기하고, 자본 스스로가 이미 합의된 관행들을 파괴하거나, ‘사보타지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규모사업장의 노조민주화투쟁, 주노조에 대한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의 여지없는 물리적, 탈법적 탄압들은 이와 같은 지배의 속성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록 자본의 성격에 따라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독점자본이 추구하고 있는 노무관리의 전략적 기조는 어디까지나 국가권력을 포함한 총자본 수준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수립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개별자본간의 차이들은 이미 한계 지워진 틀 속에서의 전술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이것이 개별자본 수준에서 노무관리 전략상의 일정한 편차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독점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 대한 규명은 이처럼 총자본 수준에서의 전략적 노무관리의 원칙과 본질에 대한 인식 위에서 개별자본의 특성들을 결합함으로써 올바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유기적인 협조관계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와 같은 전략적 노무관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직적 측면에서는 기업별조합의 유지 강화를, 그리고 이념적 측면에서는 노사협조주의를 뿌리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이와 같은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독점자본의 통제권을 벗어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의 지역, 산업, 그리고 전국적 연대조직에 대한 배제를 전략의 기본원칙으로 고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본의 전략적 노무관리의 기조는 결국 그 이전처럼 물리적 통제가 더 이상 그 효력을 발할 수 없게 된 상황과, 노동운동의 폭발적 전개라는 계급적 지형의 변화 속에서 그 동안 국가권력에 의한 물리적 통제에 의존하던 방식으로부터 이른바 개량적 노동운동’, 혹은 단순한 경제적 노동운동까지를 스스로 포함하면서 노사협조적 기업별조합의 토대를 기업의 내부에 구축하려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자본의 이와 같은 시도와 전략적 구상들은 현장 노동자 대중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사업장에서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열망하는 노동자 대중들과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그러한 대결과 갈등의 과정에서 오늘날 독점 대기업의 계급관계의 새로운 각축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점자본의 전략적 구상과 전술적 내용들이 얼마나 실제화 가능한 것인지는 대규모사업장의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전체적인 상황, 그리고 더욱 본질적으로는 한국사회에서의 계급적 역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벌의 대규모 사업장은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물적 토대이다. 따라서 독점자본은 이 부문에서 독점자본이 차지하고 있던 지배의 내용들을 강화함으로써 독점자본의 실질적지배를 확립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것에 적합한 축적체제’(accumulation regime)의 안정화는 독점자본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와 같은 의미에서 대규모사업장에서의 노동운동은 결코 개별적인 자본과의 갈등이나 대립일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자본은 이와 같은 싸움을 개별공장 수준을 넘어서 총자본의 수준에서 기획, 실행하고 있으며, 국가권력과의 긴밀한 협력관계 속에서 일관된 전략적 원칙을 갖고 노무관리의 내용들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문의 노동운동은 작게는 단위사업장 혹은 지역적 차원의 뿐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전국적인 대응과 결합하면서 전체 사회운동 속에서 그 의미가 파악되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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