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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정보서재

애플 미국 컴퓨터 전자 제품 회사

by 경제시대 2022.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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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영어: Apple Inc.)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에어팟, 아이맥, 맥북, 맥 스튜디오와 맥 프로, 홈팟 등의 하드웨어와 iOS, iPadOS, macOS 등의 소프트웨어를 설계, 디자인하는 기업이다. 2011년부터 팀 쿡이 CEO를 맡고 있다.

또한 그 소프트웨어에 애플 앱 스토어, 뮤직, 뉴스, 아케이드, tv, 피트니스, 페이, 저장 클라우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플의 이전 명칭은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영어: Apple Computer, Inc.)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간단하게 애플이라고 기업 이름을 바꾸었다.

본사는 애플 캠퍼스와 애플 파크에 두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소재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팀 쿡이다.

2015년 2월 11일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이 7000억 달러를 넘은 기업이 되었다. 2018년 1조 달러를 넘었고 2022년 2.7조 달러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이전까지는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의 전유물이었던 컴퓨터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만, 컴퓨터를 구매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은 강렬한데 반해, 정작 이들이 쓸만한 컴퓨터는 보기 드물었다. 몇몇 제품들이 나오긴 했지만, 가격이나 성능, 혹은 편의성 면에서 문제가 있어 많이 팔리지 않았다. 당시 최대의 컴퓨터 기업이었던 IBM 조차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던 1974년,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게임 회사인 아타리사에 근무하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와 대형 컴퓨터 업체인 휴렛패커드(HP)의 직원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Stephen Gary Wozniak, 1950~)’은 컴퓨터 제작 동호회인 ‘홈브류 컴퓨터 클럽’에서 의견을 나누며 자기들이 직접 컴퓨터를 만들어 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

당시 컴퓨터의 주로 쓰이던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 i8080이었다. 이 CPU는 성능이 우수했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컴퓨터의 기본 설계를 담당한 워즈니악은 인텔 i8080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높은 모토로라의 MC6800 CPU를 더 선호했으며, 이들이 만든 컴퓨터에는 MC6800 계열 CPU 중에서도 저렴한 MOS 6502를 탑재하기로 했다. 또한, 전반적인 회로 설계를 간략화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이 컴퓨터의 첫 번째 시험모델은 1976년 3월에 완성되었다. 워즈니악은 이 컴퓨터의 시험모델을 자신이 일하던 HP의 간부들에게 보여주고 이를 제조해 판매할 것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잡스와 워즈니악, 두 천재의 의기투합

이러한 이유로 잡스와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직접 부품을 모아 창고에서 제품을 제조해서 판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판매망을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잡스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바이트 샵’이라는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던 폴 테렐(Paul Terrell)에게 시험 모델을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컴퓨터에 흥미를 느낀 테렐은 30일 안에 50대를 납품해 줄 것을 요청한다. 자금이 부족했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차량과 전자계산기 등을 급히 팔아서 컴퓨터를 생산할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충분한 부품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잡스는 아타리의 기술자인 론 웨인(Ronald Wayne)에게 주식 10%를 준다고 제의해 자금을 투자하고 기술 고문을 담당하게 했다.

이렇게 잡스와 워즈니악, 그리고 웨인을 포함한 3명은 컴퓨터의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고, 1976년 4월 1일, 회사도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애플’, 그리고 컴퓨터의 이름은 ‘애플 I’이라고 붙이기로 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잡스가 일하던 오리건주에 사과 농장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잡스가 좋아하던 음악 그룹 ‘비틀즈’의 음반을 팔던 ‘애플 레코드’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전화번호부의 맨 앞쪽에 ‘A’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며, 사과 열매가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잡스와 워즈니악을 비롯한 애플의 창립자들조차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회사 이름의 유래를 다르게 설명했다고 하니 위의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애플 I은 1976년 6월에 바이트샵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으며, 대당 가격은 666.66달러였다. 하지만 초반 판매는 순조롭지 못했다. 이에 공동 투자가 중 한 명인 웨인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애플 설립 11일 만에 애플의 주식 10%를 포기하고 800달러를 받아 회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2개월 정도 지나자 입소문을 타고 애플 I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주문량을 채우기 위해 잡스와 워즈니악이 밤을 새워가며 애플 I을 생산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애플 I은 10개월 동안 200여 대가 판매되었으며, 그 결과, 잡스와 워즈니악은 8,000달러 정도의 제법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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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사 아이폰 로고

 

로고의유래

애플의 한입 베어먹은 듯한 모습의 사과 로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컴퓨터의 이론을 확립한 앨런 튜링이 독이 든 사과를 한입 배어물고 죽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성경에 나온 이브가 사과를 한입 배어물어 인류의 운명이 바뀐것처럼 컴퓨터가 인류의 문명을 바꿀거라는 스티브 잡스의 확신에 의한 것이라는 설, 그리고 처음에 도안을 내놓았을 때 토마토인지 사과인지 구분할 수 없어 한입 배어먹은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며, 단순히 아이작 뉴턴을 기념하는데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그는 초창기 때 로고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항상 고민이 있을 때 가는 사과 농장으로 가서 쉬던 중 한 입 베어 먹은 듯한 사과를 생각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유래가 어떤 것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가 출판되면서 수록된 롭 야노프가 처음 애플의 로고 제작을 의뢰받고 만든 2가지 도안(사과를 한 입 베어문 것과 베어물지 않은 것) 중 한 입 베어물지 않은 것은 체리인지 사과인지 구분할 수 없어 투표를 통해 현재의 한 입 베어문 사과 로고가 탄생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사과는 튜링의 사과가 아닌 뉴턴의 사과라고 직접 밝혔다고 한다.

 

 

애플 II,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다

애플 I이 인기를 끌자 잡스는 이를 대량생산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당시 컴퓨터 업계의 자산가 중 한 명이었던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를 설득해 92,000달러를 투자 받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77년 1월 3일, ‘애플 컴퓨터’라는 정식 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잡스는 반도체 회사인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일하던 전문 경영인, 마이클 스코트(Michael Scott)를 영입해 CEO로 취임시킨다.

CEO로 취임한 스코트는 회사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 사원 번호를 부여했는데, 당초 사원 번호 1번은 워즈니악, 2번이 잡스, 그리고 3번과 4번은 각각 마쿨라와 스코트의 몫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에 반발했고, 결국 스코트는 예정에 없던 사원 번호 0번을 만들어 잡스에게 부여했다. 이는 잡스 특유의 강한 고집과 자존심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법인 설립 이후, 워즈니악은 기존의 애플 I을 개량한 새로운 컴퓨터의 개발에 착수했다. 신제품은 CPU의 성능을 높임과 동시에 컬러 모니터 출력 기능을 더했고, 그 외에도 각종 기능 확장 슬롯 및 카세트테이프 방식의 보조기억장치를 달았다. 그리고 제품의 디자인을 중시한 잡스의 제안에 따라 매끈하고 세련된 플라스틱 재질의 흰색 본체를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애플 II’는 1977년 4월부터 1,298달러에 팔리기 시작했다. 애플 I보다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당시 컴퓨터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에 속했다. 애플 II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는데, 1978년에 7,600대 팔리던 것이 1980년에는 그 10배인 78,100대, 1982년에 이르자 30만 대가 팔릴 정도였다(참고로, 애플 II의 생산은 1993년까지 계속되었고 총 판매량은 500만 대에 달했다). 덕분에 잡스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애플이 주식 공개를 시작한 1980년 당시, 잡스의 자산은 2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잡스, 애플에서 쫓겨나다

애플 II 이후 뚜렷한 히트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잡스는 경영자로써 좀 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가 영입 1순위로 생각했던 인물은 바로 팹시 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였다. 그는 한때 코카콜라에게 크게 밀리던 펩시콜라를 업계 1위까지 올려놓을 정도로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컬리를 영입하기 위해 잡스는 18개월 넘게 끈질긴 구애를 보냈고, ‘설탕물을 팔며 인생을 보내기보단 우리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자’는 잡스의 언변에 감탄한 스컬리는 결국 1983년, 애플의 CEO직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한 배를 타게 된 잡스와 스컬리는 초반에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정통파 경영인인 스컬리는 고집과 개성이 강하고 돌출 행동을 종종 일으키는 잡스를 점차 못마땅하게 보게 되었고 둘은 사사건건 충돌하게 된다.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1984년 크리스마스 시즌, 매킨토시의 수요를 과대평가한 잡스의 잘못된 예측 때문에 애플이 막대한 재고를 떠안게 된 일이다. 이로 인해 애플은 큰 손실을 보았고 전 종업원의 20%를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컬리는 이러한 실패의 책임을 물어 잡스의 해임을 이사회에 건의 했고, 이사회는 투표를 거쳐 잡스의 해임을 결정했다. 사실 잡스는 매킨토시의 수요예측 실패 외에도 애플 III 및 애플 리사의 연이은 실패로 인해 입지가 크게 좁아진 상태였다. 애플에서 물러난 잡스는‘넥스트(NeXT)’사를 세워 독자적인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및 워크스테이션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며 재기를 노리게 된다.

정통파 경영인이 이끄는 애플은 과연?

잡스를 몰아내고 애플의 실권을 쥐게 된 스컬리는 정통파 경영인답게 제품의 다양화를 추진하게 된다. 우선 한 종류밖에 없던 매킨토시의 라인업을 세분화하여 1987년에 고화질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매킨토시 II’ 및 보급형 제품인 ‘매킨토시 SE’를 동시에 출시했고 1990년대 초 중반부터는 최상위 기종인 ‘매킨토시 쿼드라’, 중상급형인 ‘매킨토시 센트리스’, 보급형인 ‘매킨토시 클래식’, 저가형인 ‘매킨토시 LC’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 외에 다른 주력 상품이 필요하다고 느낀 스컬리는 ‘지식 내비게이터(Knowledge Navigator)’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3년에 나온 필기 입력 기능을 갖춘 세계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정보 단말기)인 ‘뉴턴(newton)’이다. 뉴턴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필기 기능을 내장했으며, 주소록 및 수첩, 계산, 스케줄 관리 등 다양한 능력을 갖췄다. 뉴턴은 오늘날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이었으나, 가격이 1,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쌌고, 이런 휴대용 단말기가 널리 쓰일 만큼 시장이 성숙되지 않아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뉴턴의 실패로 인해 스컬리의 입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3년, 스컬리는 애플의 CEO 자리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게 넘기고 물러나게 된다.

정통파 경영인이 이끄는 애플은 과연?

잡스를 몰아내고 애플의 실권을 쥐게 된 스컬리는 정통파 경영인답게 제품의 다양화를 추진하게 된다. 우선 한 종류밖에 없던 매킨토시의 라인업을 세분화하여 1987년에 고화질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매킨토시 II’ 및 보급형 제품인 ‘매킨토시 SE’를 동시에 출시했고 1990년대 초 중반부터는 최상위 기종인 ‘매킨토시 쿼드라’, 중상급형인 ‘매킨토시 센트리스’, 보급형인 ‘매킨토시 클래식’, 저가형인 ‘매킨토시 LC’ 등으로 라인업을 넓혔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 외에 다른 주력 상품이 필요하다고 느낀 스컬리는 ‘지식 내비게이터(Knowledge Navigator)’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3년에 나온 필기 입력 기능을 갖춘 세계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정보 단말기)인 ‘뉴턴(newton)’이다. 뉴턴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필기 기능을 내장했으며, 주소록 및 수첩, 계산, 스케줄 관리 등 다양한 능력을 갖췄다. 뉴턴은 오늘날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이었으나, 가격이 1,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쌌고, 이런 휴대용 단말기가 널리 쓰일 만큼 시장이 성숙되지 않아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뉴턴의 실패로 인해 스컬리의 입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93년, 스컬리는 애플의 CEO 자리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게 넘기고 물러나게 된다.

파워 PC 탑재, 매킨토시 호환 기종 출시의 투 트랙 전략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시장의 상황은 점점 애플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을 즈음하여 IBM PC  IBM 호환 PC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고, 애플의 매킨토시 시리즈는 일부 출판 및 교육 분야를 제외하면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애플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것은 매킨토시를 고성능화해 전문가 시장을 공략함과 동시에 애플이 아닌 다른 제조사에게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여 매킨토시의 전반적인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애플과 IBM, 그리고 모토로라가 협력하여 개발한 고성능 CPU인 ‘파워 PC(Power PC)’였다. 파워 PC는 당시 IBM 호환 PC에 탑재된 인텔의 펜티엄(Pentium) CPU 보다 한 수 위의 성능을 발휘했다. 파워 PC를 탑재한 ‘파워 매킨토시(통칭 파워맥)’는 1994년에 처음 출시되었고, 고성능을 요구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매킨토시가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적합하다는 이미지는 이때부터 심어졌다.

그리고 1994년, 애플은 자사 외의 업체에서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출시할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부터 파워컴퓨팅, 파이오니아, 모토로라, 유맥스 등의 업체에서 매킨토시 호환 기종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들 호환 기종들은 애플의 매킨토시와 같이 ‘맥 OS’ 운영체제를 탑재했으며 가격은 애플 매킨토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매킨토시 호환 기종은 높은 가격대비 성능을 무기로 조금씩 시장을 넓혀나갔다.

적자투성이 애플, 누가 인수할 것인가?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던 애플이었지만 1995년에 IBM 호환 PC용 운영체제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출시되어 인기를 끌자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다. 윈도 95의 출시로 인해 IBM 호환 PC는 매킨토시 못지 않은 GUI 운영체제 환경을 갖추게 되었고, 자연히 매킨토시를 쓰던 소비자들이 하나 둘 IBM 호환 PC로 떠나갔다. 더욱이 매킨토시 자체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인데도 매킨토시 호환 기종들은 점차 늘어났다. 이런 매킨토시 호환기종들은 싼 가격을 무기로 애플의 오리지널 매킨토시 판매량을 낮추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애플의 경영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1995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애플은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고, 후임으로 길 아멜리오(Gilbert Frank Amelio)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즈음하여 애플이 매각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애플과 실제로 매각 협상을 벌이거나 혹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진 기업은 썬 아미크 로시스 템,AT&T, IBM, 캐논, 필립스 등 다양했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을 후한 조건으로 인수하려 할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모든 협상은 결렬된다.

잡스의 복귀와 애플의 회생

위기에 빠진 애플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1985년에 애플을 떠난 잡스였다. 윈도 95의 출시를 즈음한 시기, 애플은 이미 성능 및 기능 적으로 한계에 달한 맥 OS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운영체제가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당시 잡스가 운영하던 넥스트 사에서 개발한 ‘넥스트스텝(NeXTSTEP)’ 운영체제가 주목받았다. 운영체제뿐 아니라 넥스트스텝의 기술 및 잡스의 경영 능력이 필요했던 애플의 이사회는 1996년, 넥스트사를 인수하고 잡스를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시킬 것을 결정했다.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매킨토시의 호환 기종 출시를 중단시킴과 동시에, 매킨토시의 라인업을 정리해 간략화했다. 그리고 초대 매킨토시의 모티브를 이어받아 디자인이 우수하고 사용이 간편한 새로운 매킨토시의 개발에 착수한다. 그 결과, 1998년에 ‘아이맥(iMac) G3’가 발표된다. 아이맥 G3는 초대 매킨토시와 같이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화했으며, 반투명과 화려한 원색이 어우러져 전반적인 디자인이 매우 미려했다. 그리고 IBM 호환 PC에 사용하는 USB 포트를 적용하는 등, 사용 편의성도 높았다.

아이맥 G3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외에도 아이맥 G3의 디자인 콘셉트를 이어받은 노트북인 ‘아이북(iBook, 현재의 맥북)’, 미려한 디자인과 고성능을 동시에 추구한 ‘파워북(PowerBook) G3’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덕분에 애플은 1998년부터 다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2001년, 기존의 맥 OS를 대신하는 새로운 매킨토시용 운영체제인 맥 OS(Mac OS) X가 등장했다. 맥 OS X의 내부 구조는 넥스트사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에 기반하고 있어 기존의 맥 OS와 큰 차이가 있었으며, 성능 및 기능은 물론, 디자인 면에서 많은 진화를 이룩했다. 맥 OS X의 등장으로 매킨토시는 윈도 기반 PC와는 확연히 다른 고유의 매력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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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파크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Apple Computer, Inc.)
Apple Inc.
주식회사
AAPL
US0378331005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광고
1976년 4월 1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애플 캠퍼스, 애플 파크)
전 세계
팀 쿡(CEO), 제프 윌리엄스(COO), 루카 마에스트리(CFO), 크레이그 페더리기(소프트웨어 부문), 조니 스라우지(하드웨어 기술부문), 존 테르누스(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에디 큐(서비스 부문), 사비 칸(운영 부문), 존 지아난드레아(머신 러닝, AI 부문), 그레그 조스위악(마케팅 부문)
아이폰, 맥북, 맥 미니, 아이맥, 맥 스튜디오, 맥 프로, 아이패드, 애플 워치, 에어팟(기본, 프로, 맥스), 홈팟(기본, 미니), 에어 태그
애플 App Store, iCloud, 애플 뮤직, TV+, 피트니스+, 뉴스+, 페이, 카플레이, 아케이드, 지갑, 북스, 애플 케어 플러스, 트레이드 인
3,658억 2,000만 달러 (2021)
1,089억 5,800만 달러 (2021)
946억 8,000만 달러 (2021)
3,510억 2,000만 달러 (2021)
5.7%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15만 4천 명(2021년)
Braeburn Capital
Beats Electronics
Claris
Apple Energy, LLC
Apple Sales International
Apple Services
Apple Worldwide Video
Anobit
Beddit
630억 9,000만 달러 (2021)
NASDAQ, Dow Jones
1980년 12월 12일
 

역사

  • 1976년 4월 1일: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APPLE COMPUTER, INC)를 설립함.
    •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론 웨인이 잡스의 부모님의 차고에서 컴퓨터 조립 키트인 '애플 I'을 만들며 애플이 시작되었다.
  • 1977년 4월 17일: 애플 II가 출시되었다.
  • 1979년 1월 3일: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가 주식 상장을 하였다.
  • 1983년 1월 19일: 애플 리사가 출시되었다.
  • 1984년 1월 24일: 매킨토시가 처음 공개되었다. '1984년 광고'가 방영되었다.
  •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해고되었다.
  • 1993년: 세계 최초의 PDA이자 태블릿 플랫폼인 애플 뉴턴을 출시했다.
  • 1997년: 스티브 잡스가 12년만에 다시 애플로 돌아와 다시 애플의 CEO가 되었다.
  • 1998년 8월 15일: 아이맥이 공개되었다.
  • 2001년 3월 24일: 맥 OS X가 공개되었다.
  • 2001년 10월 23일: 아이팟이 공개되었다.
  • 2007년 1월 9일: 아이폰과 애플 TV가 공개되고, 기업의 명칭을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 Inc.)에서 애플(Apple Inc.)로 변경되었다.
  •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가 공개되었다.
  • 2010년 6월 7일: 아이폰 4가 발표 및 공개되었다.
  • 2010년 6월 24일: 아이폰 4 판매가 시작되었다.
  • 2011년 8월 9일: 미국 증시에서 장중 엑손모빌을 누르고 시가총액 1위가 되었다.
  • 2011년 8월 10일: 미국 증시 종가에서도 시가총액 1위가 되었다.
  • 2011년 8월 24일: 스티브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팀 쿡이 애플의 새로운 CEO가 되었다.
  •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만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 2012년 1월 19일: 뉴욕에서 아이북스 2와 iBooks Author, 그리고 iTunes U 앱을 발표하면서 교육시장에 진출한다.
  • 2012년 9월 12일: 아이폰 5가 출시되었다.
  • 2013년 9월 10일: 아이폰 5s와 아이폰 5C가 공개되었다.
  • 2014년 9월 9일: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 그리고 애플 워치가 공개되었다.
  • 2015년 4월 24일: 애플의 새로운 제품인 애플 워치의 발매가 시작되었다. 팀 쿡 체제의 첫 접두사 i를 뗀 제품이다.
  • 2015년 9월 25일: 아이폰 6S와 아이폰 6S 플러스 발매가 시작되었다.
  • 2016년 3월 31일: 아이폰 SE 발매가 시작되었다.
  • 2016년 9월 8일: 아이폰 7, 아이폰 7 플러스, 애플워치 시리즈 2, 그리고 애플의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이 공개되었다.
  • 2016년 11월: 2016년형 맥북프로가 출시되었다.
  • 2017년 6월: 맥북 시리즈  아이맥이 모두 성능이 업그레이드 되었고(맥북에어 11인치, 맥미니, 맥프로 제외), 아이맥 프로가 새로 출시되었으며 아이패드 프로가 새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 2017년 9월: 아이폰 8과 아이폰 8 플러스, 애플의 10주년 아이폰인 아이폰 X가 공개 및 출시되었다.
  • 2018년 3월: 2018년형 아이패드가 출시되었다.
  • 2018년 7월: 2018년형 뉴 맥북 프로가 출시되었다.
  • 2018년 11월 : 아이폰 XR과 아이폰 XS가 한국에 공식 출시되었다.
  • 2019년 9월 : 아이폰 11, 아이폰 11 프로, 아이폰 11 프로 맥스, 그리고 애플의 새로운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 프로가 출시되었다.
  • 2020년 3월 17일: 4세대 아이패드 프로가 출시되었다
  • 2020년 4월 29일 : 2세대 아이폰 SE가 출시되었다.
  • 2020년 9월 15일 : 4세대 아이패드 에어, 애플워치 시리즈 6, 애플워치 SE가 출시되었다.
  • 2020년 10월 14일 : 아이폰 12, 아이폰 12 미니, 아이폰 12 프로, 아이폰 12 프로 맥스, 그리고 홈팟이 공개되었다.
  • 2021년 4월 20일 : 아이패드 프로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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