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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정보서재

노동시장의 변화

by 경제시대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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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의 변화 양상

- 노동시장의 분단을 중심으로 -

 

1. 서론

 

 

20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시기인 1990년대도 이제 2년여의 시간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불과 십여년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다. 정치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이로인해 수많은 기대와 갈등 그리고 좌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만불을 넘어서서 이제 거의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OECD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이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1990년대 들어 사회 각 분야에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들이 나타났고, 또 지금 현재도 변화가 진행 중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들 중에서, 빠뜨리고 생각해서는 이 시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는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노동판에 불어 닥치기 시작한 변화의 회오리는 1990년대 중반 민주노총이라고 하는 조직체계의 정비를 기초로, 급기야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적 총파업이라고 하는 상상을 뛰어 넘는 투쟁력을 발휘하였다. 1987년의 전국적인 파업의 열풍이 기업 수준에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자주적인 노동자 조직 건설의 당위성을 인정받는 역할을 하였다면, 이번의 총파업은 국가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노동문제와 관련된 제도의 변경시 당사자인 노동자 및 그 조직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더이상 옛날과 같이 노동자의 의사를 배제한 상태에서 노동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어렵게 되었으며, 노동자 및 그 합법적인 조직을 정책 시행을 위한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노동운동의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의 난관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정부 및 자본의 계속되어 온 억압적 정책의 영향도 컸겠지만, 1990년대 들어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 자체가 점차 위축되어 왔다. 피용자수를 기준으로 한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988-9017-18%대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하기 시작하여 1995년 현재 12.5%에 머물고 있다. 노동쟁의 건수도 1987-89년 연간 1,000건을 상회하였던데 비해, 1990년대 들어서는 199588, 199685건으로 까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숫치는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집권 초기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이러한 노동쟁의 건수의 급속한 하락 경향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 경향과 더불어 앞으로의 한국 노동운동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닐 것임을 예고해준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본고에서 관심을 가지는 사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10여년간의 노동운동의 결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노동시장의 분단화 경향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혹은 독점기업과 비독점기업이라는 산업구조 상의 이중구조화가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계기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 대기업 노동자는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 그리고 독점기업 노동자는 비독점기업 노동자에 비해 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으며, 또한 보다 양호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 노동자 및 독점기업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에 비해 이직률도 낮아지고 근속년수가 길어지는 등 고용이 안정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조건 상의 차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의식 상의 차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이 문제는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 내부적으로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1990년대 한국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에 대한 변화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1990년대 까지의 일련의 노동운동의 흐름을 통해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상에 어떠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이러한 변화가 본 논문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노동시장의 분단이라는 현상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2. 노동시장의 분단

 

 

198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에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부분의 논자들은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기본적인 동인은 1960년대 이후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온 자본축적과정 그 자체로부터 찾아질 수 있다. 자본의 축적과정은 다른 한편으로는 임노동의 축적과정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이들 계층의 불만의 축적을 야기시키게 된다. 증가하는 이들의 불만이 사회적으로 적절히 표출되고 조정될 수 있는 메카니즘이 마련되지 않은 채, 힘과 강제 그리고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의해 억눌려지기만 할 때, 1987년과 같은 정치적 이완기에 노동자들의 욕구가 급격히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또다른 한편으로 자본의 축적 및 이로 인한 임노동의 축적과정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해 있던 상대적과잉인구층의 자본주의 내로의 편입을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 기계화나 자동화의 진전으로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고도의 양적 성장을 지속해옴에 따라 상대적과잉인구층이 점차 고갈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무제한적 노동공급에서 제한적 노동공급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배무기(1991)), 1980년대 후반에는 노동력부족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어수봉(1992)) 기존 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동운동의 폭발노동력 공급의 부족이라고 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두 현상으로 인해 한국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는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의 급속한 자본축적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 각 부문이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노사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성장 논리를 앞세운 국가와 자본의 철저한 통제에 의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극히 후진적인 양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김형기(1988)1980년대 중반까지의 노동자에 대한 통제 양상에 대하여 위계적 노동통제의 구조화 및 제도화에 의해 성립된 관료적 통제체제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기능이 약하고 기업의 관료적 규칙이 병영적 규율을 통해 준수되며 국가권력의 파시즘적 노동통제체제에 의해 위계적 통제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불안정하다”(p.426)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병영적 통제로 특징지워지는 국가와 자본의 억압일변도의 노동통제 정책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사실상 무력화됨으로써 한국의 노사관계는 큰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 양상은 기업의 특성 혹은 노동조합의 특성에 따라서 그리고 각 시기별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아직은 유동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변화의 큰 줄기는 한국의 노사관계도 일반적인 선진국에서 보여지는 노사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일정한 제도내에서의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현대적’(modern)인 모습으로 수렴해 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하여 전후 선진국의 일반적인 축적체제를 포드주의로 개념화하여 설명하고 있는 조절이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조절이론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테일러주의 혹은 포드주의라는 노동조직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내포적 축적체제와 독점적 조절양식이 조응하는 포드주의가 등장하게 된다고 보고, 이러한 포드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포드주의는 단체교섭을 통해 생산성임금이 지급되고 고용관계가 안정화되는 가운데 노동규범과 소비규범이 변혁되고 사회보장제도가 정비되어 고생산성-고임금-고소비를 통해 임노동관계가 재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드주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대량생산체제, 이처럼 대량으로 생산되어진 상품들을 처분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고임금 및 이를 기반으로 한 대량소비, 그리고 이를 지탱해주는 제도적인 단체교섭의 정착을 통한 노사간의 합의 체제 및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를 통한 간접임금의 보전 정책 등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포드주의에서는 고임금의 대가로 생산과정에서의 노동자 배제 원칙이 유지된다. 예컨대 생산과정에서의 구상기능과 실행기능의 분리, 일반 노동자들의 탈숙련화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스웨덴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 일부 나타나고 있는 노동자의 참가,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자의 다기능화 등이 전제되는 포스트-포드주의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 후반 이후 10여년의 변화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는 본래적 의미의 포드주의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1980년대 중반 이전에도 한국의 축적체제는 대량생산을 기본 특징으로 하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포드주의 몇가지 측면에서 구조적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인해 국내에서의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 둘째, 제도화된 단체교섭이 정착되지 못하고 노사관계의 대부분의 규칙과 절차가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강제되는 병영적 노동통제가 지속되어 왔다는 점, 셋째, 국가의 사회보장정책이 극히 미비되어 있었다는 점 등이 이러한 불완전성의 대표적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 때문에 당시 한국 자본주의를 Lipietz(1985)주변부 포드주의로 그리고 김형기(1988)예속적 포드주의로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포드주의의 불완전성은 앞에서 설명한 노동운동의 폭발노동력 공급의 부족이라고 하는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상황변화로 인해 점차 완전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우선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비농전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1986년에서 1996년까지 10년간 노동자의 임금은 명목치로 볼 때 3.9배 실질치로 볼 때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선진국들에 있어서의 연평균 실질임금 인상률이 1-2%이었고 미국의 경우 오히려 마이너스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임금인상이 얼마나 급속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소득 증가는 소비의 증가로 연결되면서 노동자들의 소비규범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노동자들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의 내구소비재의 소비를 급속한 속도로 증가시킴으로써 대량소비 구조를 갖추어가고 있다.

또한 민주적인 노동조합 조직을 기초로 노사간의 단체교섭이 정착화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 노동쟁의 건수 중 합법적인 쟁의 건수의 비율이 19875.9%로부터 199586.2%로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쟁의 건수 중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기업에서의 쟁의의 비율 역시 198753.3%로부터 1995100%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조합 조직을 기초로 한 노사간의 단체교섭이 어느정도 제도로서 정착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체교섭의 실시 여부 혹은 이를 위한 노동조합의 조직 여부를 둘러싸고 노사간에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였던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하튼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이러한 변화과정을 통해 대체로 한국 자본주의가 전형적인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특징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이 분단되기 혹은 분단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노동운동이 주로 대기업에 의해 선도되어 왔다는 사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이는 1987-1995년간 규모별 총파업건수 및 그 비율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9개년 동안 총파업건수는 100인 미만 사업장 2,935, 100-299인 사업장 3,233, 300-999인 사업장 1,437, 1000인 이상 사업장 777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파업건수를 1994년 현재 사업체수로 나누어 사업체당 파업건수를 살펴보면 100인 미만 사업장은 0.02, 100-299인 사업장은 0.46, 300-999인 사업장은 0.84건인데 비해 1000인 이상 사업장은 2.11건으로 나타나 규모별 파업비율이 매우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노동운동 강도 상의 차이는 곧바로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히 평균임금 수준만을 비교해 본다면 10-29인 사업체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할 때 5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1980년대 중반까지 110대 수준에서 안정화되어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 1988126.01, 1989134.71, 1990134.97, 1991140.92, 1992137.70, 1993136.30, 1994138.08, 1995139.65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득 상의 격차는 소비 상의 격차로 연결되어 노동력재생산과정에 있어서도 일정한 차별성을 야기시키고 있다. 또한 임금 이외에도 여러 가지 노동조건의 측면에 있어서도 대기업 노동자는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 노동자는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 이직률이 감소하는 등 고용이 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규모별 이직률을 보면 1980년의 경우 1규모(10-29) 5.0%, 2규모(30-99) 5.2%, 3규모(100-299) 5.5%, 4규모(300-499) 4.8%, 5규모(500인 이상) 4.2%로 규모별로 이직률 상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1995년에는 1규모 3.3%, 2규모 3.3%, 3규모 3.0%, 4규모 2.5%, 5규모 1.9%로 나타나 규모별로 이직률 상의 차이가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5규모의 이직률 1.9%는 종신고용제로 인해 고용관계가 매우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고임금, 대량소비, 단체교섭의 정착화라고 하는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일반적 경향은 모든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균등하게 나타난 것이라기 보다는,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지극히 분균등하게 진행되어 나타나고 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었고 또한 기업들의 지불능력도 높은 대기업에 있어서는 이러한 포드주의화 경향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아직도 자본의 압도적인 세력을 기초로 한 시장 작동 원리에 의해 노사관계가 형섬됨으로써 저임금-내핍적 소비-병영적 노동통제라고 하는 1980년대 중반 이전의 특징이 온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는 보다 완전한 형태의 포드주의로 일반화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 과정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본 논문의 핵심적인 작업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음에서는 생산성과 임금의 변동 과정, 기업의 유연성 확보 양상 등에 있어서 1990년대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적인 모습을 띠며 전개되고 있는지에 관해 분석하고자 한다.

 

노동시당의 변화

 

3. 생산성과 임금

 

 

전후 현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형태로 인식되고 있는 포드주의에서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가 자본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분배과정에서 자본은 제도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자에게 생산성에 연동하는 실질임금을 증가를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의 실질임금의 증가는 대량소비로 연결되면서 유효수요의 확대를 가져오게 되어, 생산 및 투자를 증가시키는 호순환을 그리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그동안의 자본축적 과정 속에서 생산성과 임금은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면서 변화해 왔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여기서는 통계청의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를 이용하여 연도별 생산성의 증가율과 임금의 증가율을 산출하였다. 이 때 생산성을 나타내 주는 지표로는 노동자 1인당 부가가치를 사용하였고, 임금을 나타내 주는 지표로는 노동자 1인당 연간 급여액(퇴직금 제외)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1인당 부가가치나 1인당 임금에 대해 각각 명목치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을 산출하였다. 그리고 대상 산업은 광공업 전체이다. 다음 <그림1>은 이러한 방식으로 구한 연도별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과 1인당 임금 증가율의 5개년 이동평균 값을 도표화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 임금 증가율은 부가가치 증가율을 하회하다가 1987년을 기점으로 이 두 지표가 비슷하게 변동하는 방향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관련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상황을 사회 전반적으로 포드주의적 임금결정 원리가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생산성 증가율과 임금 증가율을 같게 만드는 생산성임금제에 대하여 이론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생산성임금제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사용자단체에서 주장해 온 임금결정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여 생산성 증가율과 임금의 증가율이 동일해지면 최종적으로 노동측에게 돌아가는 소득액과 자본측

 

에게 돌아가는 소득액 사이의 분배 비율이 일정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성임금제가 노동과 자본 양측 모두에 의해 바람직스러운 제도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의 분배율이 최선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예컨대 현재의 분배율이 노동측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생상성임금제가 실시될 경우, 이는 지금의 노동측에게 불리한 상태가 계속 재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산성 증가율이 임금 증가율과 비슷하게 연동한다고 하여 이를 포드주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측과 자본측 사이의 분배 상태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현재의 분배 상태에 대해 양측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 중반까지 노동자의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밑도는 수준에서 결정되어 오다가,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임금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이 비슷해져 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는 매우 획기적이고도 중요한 변화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상황을 포드주의적 임금결정 원리가 정착되어 가는 것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국에서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분배 양상에 있어 노동측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고, 이에 따라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이러한 분배 상태에 대한 노동측의 동의 내지 양해를 얻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음의 <1>은 주요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을 정리한 것이다. 표를 보면 한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 40% 전후였던 노동소득 분배율이 198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46-7%대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물론 대만에 있어서의 55-60%대의 숫치에 비해 아직도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자본 투자액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지표는 한국의 분배 상태가 얼마나 노동측에 불리하게 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와같이 노동측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분배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관련성의 강화는, 물론 생산성보다도 더 낮은 수준으로 임금이 결정되던 1980년대 중반에 비해서는 중요한 발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노사의 타협에 의한 포드주의적 임금결정 원리가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다소 상회하였다가 1991년 이후 이 관계가 다시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지금의 임금결정 원리가 불안정적임을 시사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관련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어떠한 차별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에서는 <그림1>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과 1인당 임금 증가율을 종업원 수가 500인 이상인 대기업과 500인 미만인 중소기업으로 나누어 도표화하였다. <그림2>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의 그림이고 <그림3>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의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관련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상당히 차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대기업의 경우에는 1987년 이전까지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가, 1987년을 기점으로 이 관계가 역전되어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상당히 큰 폭으로 상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관계는 1991-2년을 기점으로 다시 역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1987년 이후에도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임금 증가율은 생산성 증가율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두 변수의 증가율 상의 격차는 1980년대 초반부터 점차 축소되기 시작하여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는 격차가 극히 미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의 경우는 1987년 후반 이후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관련성이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며 서로 부조응의 관계를 보이는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1987년 이전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생산성과 임금은 일관되게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임금 결정 원리에 있어서 포드주의적 원리가 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1980년대 중반이라는 출발점에서의 노사간의 분배 구조가 노동측에 극히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중소기업과 같이 임금이 생산성의 변화에 밀접히 관련을 맺으면서 변화할 경우, 결국 이는 노동측의 입장에서 볼 때 불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지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오히려 대기업에서와 같이 1980년대 후반 이후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하는 것이 왜곡된 분배 구조를 시정하여 원래적 의미의 생산성 임금제 혹은 포드주의적 임금결정 원리가 성립될 수 있는 기초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역시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밀려 결국 1991-2년을 기점으로 다시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밑돌게 되는 상황으로 반전되고 만다.

이상의 분석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임금 증가율은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밑돌고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이 두 변수는 서로 비슷한 값을 가지며 변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노사간의 분배 구조가 노동측에 극히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포드주의적 임금 결정 원리의 확립이라 보기는 힘들다. 규모별로 볼 때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임금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 사이의 관련성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임금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는 대기업의 경우가 왜곡된 분배 구조를 시정하여 원래적 의미의 포드주의적 임금결정 원리가 성립될 수 있는 기초를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역시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밀려 결국 1991-2년을 기점으로 이 두 변수 사이의 관련성이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대기업에 있어서도 포드주의의 기초가 마련되는 과정조차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기업의 유연성 확보 양상

 

 

최근들어 자본측의 입장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유연성(flexibility)’이라는 개념은 사실 1970년대 서구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관련하여 논의되어져 왔다. 포드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대규모의 일관조립생산방식이 가지는 생산과정 및 노동과정에서의 경직성, 그리고 단체교섭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 및 기타 고용관계 상의 경직성과 같은 유연하지 못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직성이라는 약점으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선진 각국은 생산성 저하라고 하는 포드주의의 위기를 겪게 되고, 이러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각국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연한 방식의 도입을 추진하게 된다.

유연성이라는 개념은 논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통상 수량적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으로 분류되어 진다. 여기서 수량적 유연성이란 기업이 노동자 수나 노동시간과 같은 노동투입 총량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물론 이는 기존 고용 노동자에 대한 해고의 자유나 노동시간의 변경 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시공 혹은 파견 노동자의 활용이나 외주하청 등을 통한 노동의 외부화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다음 기능적 유연성이란 다품종소량생산체제에 있어서 변화하는 생산 상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자의 직무배치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과정 상에서의 직무의 개편 혹은 직무순환직무충실 등을 통해 한 노동자가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다능공으로 변화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기능적 유연성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자본의 의도와 탈숙련화된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내에서 노동의 내용을 보다 풍부히 하고 더 나아가 일정정도의 구상 기능까지를 회복하려는 노동측의 의도가 맞물려 있는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급격히 활성화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측 입장에서 볼 때 이윤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은 기업 수준에서 그리고 국가 정책의 수준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지난해의 자본측의 노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기업 수준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자본측의 전략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어떠한 차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에서는 수량적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으로 나누어 그 각각에 대한 실태를 검토하기로 한다.

 

(1) 수량적 유연성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수량적 유연성이란 기업이 노동자 수나 노동시간과 같은 노동투입 총량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는 임시공 혹은 파견 노동자의 활용이나 외주하청 등을 통한 노동의 외부화까지 등이 포함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본 논문에서는 수량적 유연성의 여러 차원 중 노동자 수의 조정에 대하여만 고찰하기로 한다. 물론 이는 다른 부문의 경우 시계열 자료는 물론 횡단면 자료조차 공식 집계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자료 제약 상의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외에도 수량적 유연성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역시 자기 기업에서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수를 얼마나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수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였다. 통계청의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를 이용하여 연도별 기업체당 평균 노동자 수를 산출한 다음, 연도별 지난 해 대비 이 지표의 증가율을 구하였다. 그리고 같은 자료에서 기업체당 평균 생산액과 평균 유형고정자산액을 구하고 이를 각각 1990년 기준 불변가격으로 환산한 다음,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 지표의 연도별 지난 해 대비 증가율을 구하였다. 대상 산업은 광공업 전체이다. 다음 <그림4>는 이러한 방식으로 구한 연도별 기업체당 노동자 수의 증가율, 생산액의 증가율,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의 5개년 이동평균 값을 도표화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우선 기업체당 노동자 수의 증가율은 1980년 이래 계속 마이너스 값을 가짐으로써 평균 노동자 수가 계속 감소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표는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의 값을 가지면서도 시기적으로는 일정한 기복을 그리며 변동해 오고 있다. , 기업체당 노동자 수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감소 폭이 커지다가, 1982년부터 1987년까지는 감소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1987년 이후부터는 다시 감소폭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동은 그림에서 실선으로 그려진 생산액의 변동 추세와 극히 유사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기업체당 평균 노동자 수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기업은 생산액을 감소시킬 때에는 노동자 수를 급격히 감소시킴으로써, 그리고 생산액을 증가시킬 경우에는 노동자 수의 감소 폭을 축소시킴으로써 이에 대응해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기업체당 노동자 수의 증가율이 여전히 마이너스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액이 증가하는 것은 다른 생산요소인 자본의 투입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면 1987년 이전까지 생산액의 증가율과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은 매우 비슷한 값으로 변화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생산의 증가를 위해 자본 투입 절대량의 증가와 노동 투입의 감소 폭의 완화를 도모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1987년 이전에는 이 세 변수가 거의 비슷한 변화 양상을 보였던데 비해 1987년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우선 기업체당 생산액 증가율의 완만한 감소 경향과 더불어 노동자 수의 증가율도 감소하고 있으나, 그 이전 시기에 비하여 노동자 수의 감소폭이 -10%대에 육박할 정도로 훨씬 심각해지고 있다. 생산액의 완만한 감소와 노동자 수의 급격한 감소 사이의 간격을 메웠던 것은 생산액의 증가율을 초과하는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이었다. 그림을 보면 생산액 증가율과 유형고정자산 증가율은 1987년 이전까지 거의 비슷한 값을 가지며 변동해 오다가, 이 시기 이후에는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이 생산액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론을 내릴 수 있다. 먼저 한국에 있어서 기업체당 노동자 수가 계속 감소해 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의 의사에 따라 노동자 수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사실상 기업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적 혹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해고의 자유가 상당정도 제한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처럼 노동자 수가 계속 감소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동안 기업의 높은 이직률에 기인하는 것이라 판단된다. 노동자들의 이직이 활발한 상황에서 기업은 이직한 노동자에 대한 충원을 시행할지 여부를 통해 노동자 수를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의 세력이 강해지고 이직률도 감소하고 있는 1987년 이후에도 오히려 그전보다 더 대규모의 고용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 이후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이 생산액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기업체당 노동자 수의 대규모적인 감소 경향은 결국 자본측이 노동운동의 강화 및 임금 인상에 대해 자본의 투입을 증가시키고 대신 노동자의 고용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취해온데 따른 결과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1987년 이후에도 고용이 오히려 그 전보다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결과적인 사실은 노동자 수 조정이란 차원에서의 기업의 유연성이 지금까지도 큰 어려움 없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노동자 수의 변화 추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다음의 <그림5><그림6>은 각각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해 <그림4>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연도별 기업체당 노동자 수의 증가율, 생산액의 증가율,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의 5개년 이동평균 값을 도표화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우선 대기업의 경우 연도별 노동자 수의 증가율은 0% 수준에서 거의 변동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87년을 전후로 하여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유형고정자산의 증가율이 생산액 증가율과 거의 비슷한 값을 가지고 있었던데 반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유형고정자산이 생산액보다 훨씬 더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그 전과는 달리 생산액의 증가율을 상회하는 자본(유형고정자산)의 투입이 있었던 1980년대 후반에도 기업체당 노동자 수가 거의 변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기업에 있어서는 앞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노동자 수를 조정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경직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 대기업에 있어서는 노동자의 이직률이 1%대로 크게 낮아지고 있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활동으로 인해 인위적인 고용 감소가 어려워짐에 따라, 그만큼 노동자 수를 조정할 수 있는 기업의 유연성 자체에 일정한 제약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몇 년전부터 일부 거대 기업체를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는 소위 명예퇴직제의 일반화 경향이나, 지난 노동법 개정 당시 정리해고제에 대한 대기업 집단의 강한 애착 등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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